청동·황동 등 금속 용액 이용
독특한 작품 세계 구사
조각 11점 회화 7점 소개
대구 리안갤러리 내달 9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재불조각가 윤희 ‘빗물 화석’전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윤희(70) 개인전 ‘빗물 화석’전이 오는 5월 9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프랑스로 넘어간 윤희는 형상을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기고 하고, 돌을 망치로 쪼개고, 틀을 만들어 찍어내기고 하는 조각과 달리 800~1200 도의 끓는 쇳물을 허공에 던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가며 의도치 않은 형상을 작업으로 펼쳐내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2018년 리안갤러리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국내외 미술 관계자들과 평단의 호평을 이끈 바 있다.

윤희는 원추, 원형 등의 주형(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틀)에 고온에서 용해시킨 청동, 황동, 알루미늄 등의 금속 용액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던지도록 해 그 용액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거나 겹겹이 쌓이고 엉겨 물질 그 자체가 스스로 작품의 최종적 형태를 이루도록 하는 독특한 제작 방식과 예술적 문법을 이룩한 작가이다.

지난 서울 전시는 이렇게 금속 물질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작가의 ‘의도성’과 그의 손을 떠나 우연적 형태로의 귀결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작가의 상반적 태도의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봤다면, 이번 대구 전시는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작가가 다루는 금속 재료의 물질 자체에 내재된 다양한 특성이 어떻게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지에 더욱 관심을 뒀다.

이는 전시 표제인 ‘빗물 화석’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같은 뜻의 불어 제목인 ‘pluie-fossile’(플뤼 포실) 연작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는 무기물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극단의 성질을 가진 무형의 비물질인 빗물과 다양한 형태성과 단단한 물질성을 지닌 화석의 특성을 동시에 시각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윤희 작가는 ‘빗물 화석’을 통해 용해되거나 응고되는 금속 자체의 근본적 성질을 이용해 모순된 물질의 다층적 양면성을 시각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게 한다. 용해시킨 알루미늄을 반복적으로 천장에 던지는 행위를 통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액체의 유동성과 그러한 흐름이 서서히 응고되며 화석과 같이 단단한 고체 덩어리로 변모하는 순간이 생생하게 고착화된다. 즉 윤희의 작품에서 액체와 고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금속의 물질성은 시각적으로 역동성과 고정성의 동시적 공존을 가능하게 하며, 더 나아가 무름과 단단함, 부드러움과 거친 표면의 질감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알루미늄, 청동, 황동으로 된 작품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모두 다른 작업자를 통해 실현된 작품이기 때문에 비록 동일한 작업 방식과 과정을 통해 완성됐지만 각 재료의 물질적 특성과 색상에 더해 우연적으로 형성되는 문양에 있어서 작업자 고유의 개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즉 각각의 재료의 물질적 특성과 함께 작업자의 개인성이 드러나며, 이 또한 그것을 의도한 작가의 창조성의 일부분이다.

결국 윤희 작품 속에서 자아와 타자, 능동과 수동은 구분 불가능해지고 작품 형태의 우연성은 작가의 의도성으로 수용된다. 각각의 개별 작품은 비록 역동성을 내재하고 있으나 하나의 고정된 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들을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세우거나 눕히는 설치 방식을 통해 서로 상관관계에 놓이게 하며 이를 통해 전시 공간 전체를 역동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번 전시는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가가 열정을 다해 완성한 최신 조각 작품 11점과 7점의 회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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