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엄마, 엄마 직업은 뭐라고 써야 해?”

저녁을 준비하던 내게, 학교에서 보내온 온라인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며 첫째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 아니야?”/“아니지 작가지.”/“아니야, 엄만 요리를 잘하니까 요리사야.”

내겐 말할 틈도 주질 않고 둘째와 셋째가 서로 내 직업에 대해 옥신각신할 때, 나는 한숨이 절반인 말로 뱉어냈다.

“엄마 사실…. 잘 모르겠어.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렇게 종일 마음을 썼던 일이 아슴아슴 떠올랐다.

오전 일찍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A작가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예술활동증명’을 어떻게 하느냐며, 몇 해 전 내게 그 이야길 들었던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 가입과 증빙서류에 대해 이야길하며 걱정이 먼저 앞섰다. 예전에 비해 절차와 서류들은 간소화되었지만 처음 해 보는 이들에게 컴퓨터 서류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예술활동증명’을 꼭 하라고 당부했던 B작가에게 전활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도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결국 나는 B작가에게 그동안 작업했던 전시도록과 리플릿을 챙겨 오라며 약속을 잡았다.

사실 나는 내 일 아닌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고 그 와중에 작가로써의 자존심도 지켜내기 위해 틈틈이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내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도 사치라고 여기고 내 앞만 보고 살았다.

그런 내가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종일 전화를 돌리고 의견을 묻고 약속을 잡았다. 그러던 중 일부 작가들은 자신이 예술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왜 ‘예술활동증명’을 따로 해야 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코로나19로 전시, 공연, 예술수업 일정이 전면 취소되었을 것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도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런데 예술의 가치라는 것이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측정되기 어려운 가치이기에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시장가치평가방법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보통 그렇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인들은 생산자로써 그들의 예술작업을 공적 차원에서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예술인으로의 공증된 자료, 즉 국가에서 원하는 몇 가지 장치들을 알고 다소 어려워도 당장 쓸모가 없는 것 같아도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한데 그렇게 했던 일들이 뜬금없는 오지랖은 아니었나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에 대한 푸념으로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뱉어낸 것인데 셋째가 갑자기 두 팔을 크게 벌려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10살 막내의 작은 품에서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락 녹아내리는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나직한 막내의 목소리.

“엄마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엄마는 내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