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품 안에서 성장한 박목월 <하>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선 박목월 시인의 흔적과 만날 수 있다.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선 박목월 시인의 흔적과 만날 수 있다.

한국근대시사에서 방언(方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백석(1912-1996)을 들 수 있다. ‘여우난골族’(1935)과 같은 작품은 “명절만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엄매’, ‘아배’, ‘진할머니’, ‘진할아버지’는 모두 백석이 나고 자란 평안북도 정주 지방의 방언이다. 백석은 방언의 전면적인 사용을 통하여 개체 차원은 물론이고 민족 차원의 시원(始原)을 끊임없이 환기시켰던 독특한 개성의 시인이다. 백석과 더불어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시인으로 김소월(1902-1934)을 들 수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김소월이 남긴 230여 편의 시에는 방언 내지 방언에 준하는 말들이 8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김용직, ‘방언과 한국문학’, 문학과 방언, 역락, 2001) 김소월은 방언을 통해 독특한 시의 리듬을 창출하고 민족적 정서를 노래하는데 성공한 민족시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인 정지용(1902-1950)이 1940년 9월에 박목월을 문단에 추천하면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한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朔州龜城調(삭주구성조)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시선후기’, 문장, 1940.9)는 추천사를 남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소월이 그러했던 것처럼, 박목월 역시 방언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 향토적 서정과 전통적 가락을 창조하는데 성공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시인을 “오빠”가 아닌 “오오라베”라고 불러줄 때, 시인은 “앞이 콱 막히도록 좋”은 것이 아니라 “앞이 칵 막히도록 좋”다. 시인이 사랑하는 나무나 하늘이나 꽃은 “내 고장의 그 사투리”로만 표현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시인이 “내 고장”과 “내 고장의 자연”과 그리고 “내 고장의 사람”에 다가가는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사투리일 수밖에 없다.…

서정주가 박목월을 일컬어 “남방적 향토정서를 표현”(한국의 현대시, 일지사, 1969)한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한 것처럼, 박목월은 가장 향토성이 강한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오세영은 이러한 향토정서를 구현하는 수단으로써, 박목월이 “향토에 대한 서경적 묘사”, “향토적 삶의 소도구”, “경상도 방언”을 활용했다고 말한다.(오세영, ‘박목월론’, 현대시의 실천비평, 이우출판사, 1983) 이러한 향토성을 구현하는데 모어이자 토박이말인 방언이 활용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본래 방언은 서민들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서, 지역성과 현장성을 진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방언이 많이 사용된 박목월의 대표적인 시로는 ‘아가’, ‘눌담’, ‘산그늘’, ‘목단 여정’, ‘한정’, ‘낙랑공주’, ‘진주행’, ‘적막한 식욕’, ‘치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시에 나타난 영남 방언으로는 “상기(늘)”, “해으름(해거름)”, “고누는(겨누는)” 등의 단어와 “아인기요”나 “안는기요”와 같은 종결형 어미가 꼽힌다. (이상규, 방언의 미학, 살림, 2007) 이 중에서도 ‘사투리’는 제목처럼, 박목월에게 사투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투리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透明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이 마르는
黃土흙 타는 냄새가 난다.

-‘난(蘭). 기타’(신구문화사, 1959)

이 시에서 사투리는 언어 이전에 생명 그 자체이다. 언어가 천연색(天然色)의 입체를 흑백의 평면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사투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미메시스(mimesis)하는 경이로운 수단이다. 그렇기에 “경상도 사투리”에는 풀냄새와 이슬냄새와 입안을 마르게 하는 황토흙 타는 냄새까지 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실감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에, 소녀가 시인을 “오빠”가 아닌 “오오라베”라고 불러줄 때, 시인은 “앞이 콱 막히도록 좋”은 것이 아니라 “앞이 칵 막히도록 좋”다. 시인이 사랑하는 나무나 하늘이나 꽃은 “내 고장의 그 사투리”로만 표현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시인이 “내 고장”과 “내 고장의 자연”과 그리고 “내 고장의 사람”에 다가가는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사투리일 수밖에 없다.

 

박목월 시선집 <위>.박목월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필기구와 습작 노트.
박목월 시선집 <위>.박목월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필기구와 습작 노트.

시인이 추구한 방언의 미학이 꽃을 피우는 것은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1968)에 이르러서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대부분에는 영남 방언이 적극적으로 구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만술아비의 축문’은 자연스러운 시적 리듬과 방언의 능숙한 구사를 통하여 한국인의 심성 깊숙한 곳에 담겨진 인생 철학을 보여주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萬術 아비의 祝文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삿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리고개
아베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萬術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亡靈도 感應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1968)

전통 사회에서 축문(祝文)은 가장 엄숙한 언어의 형식이다. 그것은 유교 사회에서 신(조상신)을 섬기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술은 그러한 권위를 뒷받침할 지식(“낸 눈이 티눈”)도 능력(“등잔불도 없는”)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죽은 아버지 배고프지 말라고 소금밥이나마 꾹꾹 눌러 담는 정성 뿐이다. 그런데 2연에서는 이 정성이 기적을 일으킨다. 죽은 아버지는 만술의 정성에 감동해서(“엄첩다”) 감응을 하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마음뿐인 만술의 정성은 이승과 저승을 건너뛰고, 결국에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까지도 넘나든다. 이 거룩한 사투리 축문이 읽히는 고요한 밤에, 세상에는 감응의 증표인 “굵은 밤이슬”이 오는 것이다. 만술과 죽은 아버지, 이승과 저승,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벽이 허물어지는 이 장엄한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방언 이외의 다른 말을 떠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0-70년대 박목월의 시에서 방언의 사용이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던 시세계가 일상적 삶을 대상으로 하는 시세계로 변모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이해하고는 하였다. 이와 관련해 방언과 방언을 낳은 표준어의 간략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표준어는 19세기 서양에서 발생한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로서, 국민의 의사 전달 수단을 통일하여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경우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 개념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처음 도입되었고, 1930년대에는 조선어학회의 주도로 표준어 사정(査定)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 결과물이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으로서, 이 책은 표준어를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의하고, 6천111개의 단어를 표준어로 선정하였다.(정승철, 방언의 발견, 창비, 2018) 한국사회는 광복 이후에도 표준어를 정책적으로 채택하였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하게 표준어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언은 소멸되어야 할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어 교정과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이것은 중앙집권적인 사회 체제의 심화현상과도 맞물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토를 사랑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정서와 가락으로 시를 썼던 박목월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방언이 지닌 미학과 가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제 말기 박목월이 ‘환상의 지도’에서 아름다움을 구현하며 광기의 시대를 건너려 했다면, 효율을 최우선시하며 모든 것이 표준화 되는 산업화 시대에는 ‘향토의 언어’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삶의 진실을 건져 올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술의 그 갸륵한 마음이 담긴 방언이 무지와 차별의 표시가 아니라 개성과 존엄의 표시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시인의 꿈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꿈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