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가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하고 그 관점은 미술의 형식을 결정한다. 종교적 신념을 작품에서 표현했던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사람들은 보고 있는 세계를 옮기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를 그대로 작품 속에 옮길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원근법이다.

서양미술사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은 1427년경 화가 마사초가 그린 ‘성 삼위일체’이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신학적 관계성이 묘사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벽면에 소예배당을 만들어 부호들에게 분양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 가족 예배당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지만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을 프레스코로 장식하면서 마사초는 실제 예배당의 공간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했다. 화가는 착시효과를 증가 시기키 위해 실제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원통 모양의 천장을 그려 넣었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실재감과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 당시 피렌체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며 흔히 볼 수 있었던 고전적인 기둥과 둥근 아치와 같은 건축적 요소를 사용하였다. ‘성 삼위일체’에 나타나는 건축물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에 지은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 그리고 건축가 알베르티가 만토바에 지은 산탄드레아 성당(1472) 파사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만테냐는 독특한 시점으로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감상자가 안치된 그리스도의 시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선택된 시점이다. 시각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극도로 단축시켜 묘사했다.

원근법을 통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만테냐의 또 다른 대표작은 만토바에 위치한 팔라초 두칼레의 신혼의 방 천정에 그려져 있다. 벽면 전체가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가운데 천정에 그려진 벽화는 하늘로 열려 있는 건축 구조를 모방하고 있으며 그곳을 통해 그림 속 인물들이 방안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르네상스가 발명한 원근법은 수백 년 동안 서양미술사가 지켜온 절대적인 원칙과 같았다. 그런데 원근법을 통해 역으로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서양미술사를 움직여 온 가장 중요한 미학적 원리가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에 대한 모방과 재현이라는 사실이다. 그려진 대상이 얼마나 실재의 것에 닮아 있는가, 얼마나 완벽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가하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원칙으로 작동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칙과 같았던 원근법의 지배가 느슨해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보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 그 자체를 그리면서부터 미술은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원근법적 공간이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보았다면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심지어 시점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작품까지 나타나게 된다.

기계적으로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해 내는 카메라의 발명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고, 미술은 관념화되고 개념화 되었다. 그렇다고 원근법의 역사가 그대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 비록 고전적 원근법은 고리타분한 유물이 되어 버렸을 지라도 미술가들은 원근법과 대결하며 새롭게 보는 방식들과, 존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작품을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