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로 각 국가 지역에서 주민들의 외출, 이동을 제한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4월 5일 안토니오 쿠데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가정내 폭력(DV·domestic violence)이 급증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였다. 신형 전염병 대책으로 외출이 제한되는 가운데 여성에 대한 가정내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구제와 가정내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유엔에 따르면 외출이 금지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1주일 동안 가정내 폭력 건수가 30% 이상 증가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트위터 트렌드에서는 코로나이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원격근무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생활환경이 급변하여 상대방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가치관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충동적으로 이혼으로 발전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가장 밀접하고 서로 이해하며 보듬어야 할 부부 사이가 오히려 벌어지게 된 셈이다. 이는 유엔이 지적한 가정내 폭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졌던 일상생활의 리듬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무너지고 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단체 등의 주요 행사가 취소, 연기되는 한편 직장인의 재택, 원격근무 등이 확대되면서 종전과 다른 생활 리듬을 갖게 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쌓이고 있다. 평소에 직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던 가장이 익숙치 않던 재택근무 환경과 원활하지 않은 업무처리에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때로는 육아, 청소, 가사노동 등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생활 근육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 나누던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한지 제법 시일이 지나 학습 리듬이 망가지기 직전이다. 게다가 학교에서야 선생님보다 학생들 숫자가 많아 각자에 대한 간섭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온종일 집에 있는 동안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부모님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일일이 지적까지 받게 되자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은 단연코 주부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아침 밥상만 제대로 준비하고 나면 자녀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고 일정 시간 동안 자신과 떨어지기에 일상적인 가사만 마치면 사실상 소중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저녁도 대부분 남편은 직장에서 회식, 야근, 친구 모임 등으로 자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하면 되었다. 편안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감정을 이입하면서 주부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대낮의 고요한 일상이 사라진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까지 온 가족이 모두 집안에서 지내는 기일이 길어지자 당장 메뉴 구성하는 데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가족들도 며칠 정도는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가사노동은 주부의 몫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녀들은 공부를 핑계로 방으로 사라지고, 가장은 모처럼 편안한 시간이라며 거실 소파에서 리모컨만 잡고 있다가 밥때가 되면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메뉴를 찾는다. 평소 과묵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가장의 발언도 늘어난다. 집안의 가구 배치부터 자녀의 생활 태도, 주부에 대한 반찬 투정까지 눈에 거슬린다고 일일이 늘어놓기 시작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 스트레스가 차오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것은 가족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 자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면서 구성원 모두의 생활 리듬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역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나 조기에 개발되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족마다 다른 구성원과 다른 사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화나 가정내 폭력 등의 문제는 가족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대화가 부족하였던 가족들이라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예전보다 더욱 화목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흔히 자동차운전만큼은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배우라고 하듯이 온종일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즐거운 대화만으로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무리 시간이 나더라도 가족 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쌓여 있던 마음속의 이야기를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그리고 부부간에 나누는데 한 달 이상 이어지기도 어렵다. 결국은 평소 같으면 다양한 시간상의 제약으로 빠르게 봉합되었을 화제가 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해와 다툼이 일어나고, 그것이 새로운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그 불씨를 태우는 원료로 작용하면서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자신이 청소년이건 가장이건 주부건 그 위치를 떠나 무엇보다도 최우선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할 대상이다.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자신이 느끼는 짜증과 스트레스를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이끄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코로나19로 재택 시간이 늘어나도 생활 관련 소비지출이 바뀔 일은 크게 없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사는 대신 온라인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택배로 받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지역 주민들의 소비지출에서 나타난 현상은 가족의 위기상황보다는 화목으로 이어지는 방향이어서 기대감을 주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포항 등 경북동해안 지역 주민들은 지난 1∼2월 중 예년과 달리 악기점과 케이블TV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재택 시간을 활용하여 가족들과 영화, 드라마를 함께 시청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그 누구라고 그동안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로 소홀히 했던 악기를 다루는 취미생활도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번 재택 시간 동안 가족들과 집에서 영화를 시청하거나 가족의 악기 연주에 즐거워하는 시간은 어쩌면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모두 평생에 한 번 정도로 주어진 시간일 수도 있다. 학생은 졸업 후 부모를 떠나 취업과 결혼까지 하고 나면 명절 때 몇 시간 정도 외에는 지금처럼 부모들과 함께할 시간은 만들지 못한다. 가장이 은퇴할 무렵에는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기에 지금과 같은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주부가 가족의 세끼 식탁을 차리는 시간도 생각만큼 길지 않다. 사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금 주어진 재택 시간은 지겹고 남는 시간이 아니라 매우 귀중하게 아껴야 할 시간이다. 그 귀중한 시간을 스트레스로 인해 정작 자신의 가정을 위기에 빠트리지 않고 가족을 살펴보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쉬운 문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