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장애인아동문학가 허용호, 30년 만에 테라코타 작업 시작
지난해 12월엔 두 번째 그림 동화책 ‘정윤아 놀자’ 출간하기도

테라코타 작업을 하고 있는 허용호 작가. /김훈 사진작가 제공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아동문학가 허용호가 흙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테라코타 조각가, 일러스트 작가를 거쳐 아동문학가로 변신한 그는 또 다른 깨달음으로 30년 만에 다시 흙을 만지며 창작 예술가로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허용호 작가는 지난해 12월 24일 두 번째 그림 동화책 ‘정윤아 놀자’를 출간했다. 한 해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부터 허 작가에게 장애인과 관련된 책을 같이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허 작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도전했다.

‘정윤아 놀자’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원이와 정윤이의 특별한 외출이 담긴 내용으로 휠체어장애인 시원이와 비장애인 친구 정윤이가 영화를 보러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큰 틀로 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턱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 인도로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내려서야 하는 경우, 영화관의 장애인석은 제일 앞과 제일 뒷좌석밖에 없어서 원하는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형편 등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마음 풍선이라는 상징적인 매개체를 통해 현실감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허 작가 자신이 휠체어장애인인 만큼 일상에서 장애인으로 겪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허 작가에게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글라이더를 즐길 만큼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는 22살 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척수장애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미술대학 조소과에 다니던 시절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기간에 행글라이더 낙하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중도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을 명상으로 극복하며 그는 테라코타 작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약했다. 그리고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동화작가로 변신했다.

그런 그가 요즘 가진 또 하나의 취미는 드론이다. 드론은 자신의 불편한 몸을 대신해서 자유롭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며 그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을 선사한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흙을 다시 만지게 됐다.

그에게 글과 그림은 하나의 재미난 놀이였다. 신선한 충격이고 자유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놀이터였다. 그런 그가 최근 고민에 빠졌고 새로운 깨달음에 다다랐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폭력, 자극적인 것들이 너무 많은 현대에서 예술의 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작품은 예술가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다. 좋은 작품은 작가의식과 더불어 예술성과 테크닉이 부합돼야 한다.”

자신의 예술작업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작작업 자체에 무게를 싣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 작업에서 꾸준히 환경문제에 접근했던 그는 30년 만에 다시 시작한 흙 작업을 통해서도 그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바다, 공기, 식물 등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병들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보존이 아닌 발전에만 치우쳐 있다. 인간의 삶은 동물에 대한 윤리, 환경에 대한 인식, 먹거리에 대한 절제를 실천하는 생활로 변화되어야 한다.”

허용호 작가의 소중한 철학이 흥건히 발현된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인식에 종요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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