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하영어 강사
이미하
영어 강사

내 인생에서 큰 축복 하나를 꼽으라면 평생 동지로 함께 하는 세 친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총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학창시절부터 오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친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며 삶을 함께하고 있다. 부모님도 모두 같은 교회를 다니고 넷 모두 청년부에서 연애하고 짝을 맞춰 가정을 이루었다.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우리는 결혼 이후 더욱 끈끈한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

매년 만개한 꽃들이 새봄 축하 팡파르를 울리는 이맘때 우리 사총사는 특별 행사를 계획한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소풍이다. 이 특별한 소풍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 당시 자녀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모두 통감하고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일을 계획했다. 우리를 위해 애써주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네 부부는 다가올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들께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드리자며 의견을 모았다. 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정한 후 모두 함께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하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

소풍날에는 빨강, 노랑, 나들이옷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이 봄꽃보다 더 화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두 분은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너스레 담당 우리 남편. 부모님과 딸, 딸들의 사위 또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들을 짝 맞춰 세트로 소개하고 지금껏 길러주고 보살피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렸다. 사진 담당인 나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에 부모님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잡힌다.

즐거운 소풍 길에 흥겨운 노래 한 판 빠질쏘냐? 마이크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손사래 치며 사양하던 분들이 흥이 오르자 마이크를 좀체 놓지 않는다. 숨겨 둔 뜻밖의 노래 솜씨를 뽐내시는 아버님께 앙코르 요청이 쏟아진다. 몇 바퀴 돌아가자 레퍼토리가 떨어지신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셨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마이크를 꼭 잡고 며칠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노래를 불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두우~~울이 앉아…….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울컥하는 마음을 눌러가며 노래를 마쳤다.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자녀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시는 어르신들 눈에는 어여쁨과 사랑이 가득했다.

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일행은 산책을 시작했다. 부모님 걸음 속도에 우리도 보조를 맞추며 함께 손잡고 봄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네 딸은 가슴 뭉클함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느껴졌으리라. 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우리는 곳곳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딸의 손만 살짝 끌어당겨 닮은꼴 미소를 남긴다. 아들은 엄마의 가냘픈 어깨를 팔로 감싼다. 아들의 든든함에 엄마는 자랑스러움이 얼굴에 한껏 배어난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꼭 붙어 앉은 딸과 사위, 다정한 웃음 띤 얼굴이 모두 둥글둥글 닮은꼴이다. 한껏 흥분한 어머니들 뒤편에서 어색해하는 아버님 챙기기는 딸 몫이다. 어머니 곁에 앉힌 후 함께 찍은 사진 속 아버지들은 소년마냥 수줍어한다.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화사한 봄꽃 기운을 받아서일까? 피곤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른들 얼굴에는 흥분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가는 길에 미처 부르지 못했던 노래로 마이크는 다시 돌아갔고 흥겨움 속에 포항에 도착했다. 엄마 중에 가장 맏언니가 자녀들에게 감사 인사를 나눈 후 부모님 시작한 첫 소풍을 기쁨과 감격 속에 마쳤다.

해마다 부모님의 기대 속에 이 특별한 소풍을 지속했는데 근래 부모님들의 기력이 현저히 떨어져 재작년부터는 여행 대신 가까운 콘도에서 함께 일박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함께 모이기 불가능한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소풍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는 날, 다시 특별한 소풍을 시작할 것이다. 부모님, 부디 건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