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오스트레일리아와 김승희 시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볼 수 있었던 골드코스트 해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볼 수 있었던 골드코스트 해변.

혹자는 “그린란드(Greenland·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위치한 섬)보다 큰 건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어쨌거나 크기와는 관계없이 바다 위에 떠 있으니 섬이지 뭐…”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둘러싼 재밌는 설전이다.

지구 위에서 6번째로 큰 국가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오스트레일리아. 두어 해 전 캥거루와 거대한 붉은 사막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1주일쯤 머물렀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땅덩어리만이 아닌 대부분의 것들이 컸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라면 183cm에 87kg쯤 되는 기자가 작은 편이 아니다.

근데, 브리즈번 시내와 선샤인 코스트에서 만난 거리 청소부와 식당 아저씨, 버스 운전기사는 모두 100kg이 훨씬 넘어 보였고 키 역시 보통의 한국인보다 한 뼘은 커보였다. 갑자기 어린애가 돼버린 듯한 기이한 기분으로 둘러본 골드코스트 해변의 규모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광활했다.

사우스포트에서 시작해 서퍼스 파라다이스, 벌리 헤즈, 쿨랑가타 등 4개 도시로 구성된 골드코스트의 해변은 족히 20리는 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쪽 끝에서 바라보면 반대편 끝이 가물가물 아득했다. 마치 살아서의 세상 차안(此岸)과 죽지 못하면 알 수 없는 피안(彼岸)의 거리처럼.

그 해변에서 건장한 체격의 호주 사람들이 파도타기를 하거나, 헤엄을 치거나, 일광욕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다와 접한 식당에서 보니 그 나라 사람들은 덩치만큼 먹는 양도 상당했다. 10대 소년 앞에 놓인 스테이크 크기가 한국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테이크의 2배는 돼보였다. 우리 일행은 결국 그걸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 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크기’와 ‘여유로움’에서 압도적인 나라

브리즈번 외곽에선 호주 집의 크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손만 뻗으면 바닷물이 닿을 거리에 지어진 고급 주택들 앞엔 아프리카나 중동의 독재자들까지 욕심낼 만한 잘빠진 요트가 줄줄이 정박돼 있었다. ‘1가구 1자동차’가 아닌 ‘1저택 1요트’의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지금이야 형편이 많이 달라졌지만, 국토는 넓고 인구는 적은 오스트레일리아는 20세기 한 때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손꼽혔다.

빈부의 격차가 비교적 크지 않았고, 사회복지도 나쁘지 않았다. 제 나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이민자에게도 관대했다고 한다. 나눠 먹을 빵의 크기가 꽤 컸던 시절 이야기지만.

오래 전 베트남 하롱베이 여행에서 부부와 아들 둘로 이뤄진 호주 가족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기계 수리공으로 25년쯤 일했다는 40대 중반의 호주인 아버지는 “내 집엔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돼 사는 한국에서라면 고졸 노동자가 그런 집을 가지기가 쉽지 않을 터.

한국보다는 삶의 형편이 좀 더 좋아서였을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 대다수는 여유로움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오를 때도 앞서 탄 승객이 거스름돈을 받을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릴 줄 알았고, 버스기사 역시 탑승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거리에선 경보 선수인양 걸음을 빨리하는 이들을 보기 힘들었고, 자신이 주문한 음료나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안달하며 목소리 높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골드코스트 해변 야외 레스토랑에서 느릿느릿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는 호주인들을 보며, 매번 급하게 숟가락을 놀려야 했던 한국에서의 점심시간이 떠올랐다.

크고 여유로운 국가 호주에서 우리는 왜 ‘빨리빨리’라는 단어에만 방점을 찍은 채 강퍅한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때 동시에 떠오른 게 김승희(68)의 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였다.

 

붉은 석양 아름다운 호주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열기구.
붉은 석양 아름다운 호주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열기구.

▲조금은 여유롭게 미래를 낙관해야….

세상과 인간을 향한 민감하고 예리한 촉수를 가진 김승희 시인은 한국 현대문학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중진 작가다. 그는 앞서 언급한 시에서 중의적 의미를 가진 ‘그래도’라는 단어를 재치 있게 사용한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그래도’라는 단어는 ‘그렇다 하더라도’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김 시인은 ‘그래도’를 제주도나 울릉도와 같은 섬(島)의 의미로도 쓰고 있다.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적 변용이고, 재기 발랄한 문학적 장치다.

김승희에 의하자면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섬 ‘그래도’엔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골방에서 목을 매고/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어떤 고통과 수난에도 ‘ 타오르는 찬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면 시의 마지막에선 메시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라는 섬에서/그래도 부둥켜안고/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는 위무의 메시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의 횡포에 봄 같지 않은 봄이 길어진다. 다른 도시에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시절.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인간을 외떨어진 섬처럼 서글프게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여유로움을 만들어 김승희 시인이 안내하는 미래를 낙관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 지속되는 한 희망이 온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으므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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