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는 서울에서도 변두리 동네로 취급되는 곳이다. 그렇지 않다고, 이 동네 사람들 아이디어 짜내고 한국문학관 유치하고 정지용 거리 만들고 등등 애들을 쓴다.

서울역에서 통일로 문산 가는 길 따라 독립문 지나고 홍제동 지나고 외길로 한참을 나와야 은평구라는 곳인데, 동네 가까운 곳에 이르면 벌써 북한산 남다른 기운이 밀려들어 서울 딴 곳으로 옮겨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연서시장이니 대조시장이니 전통시장도 많은 이 동네는 여전히 예스러운 풍취가 느껴진다. 서울 다른 데보다 확실히 정감 넘치고 물가도 싸다.

나 잘 가는 연서시장에 ‘똑순이네’가 있다. 이 집 아주머니는 손이 유난히 크다. 밥 한 끼 먹으러 가도, 구운 낱장 김에, 달래 간장에, 간장 게에, 노란 배춧속에, 빨간 김치까지, 여기도 뭐가 남을까 싶게 퍼주시곤 한다. 이 불경기에도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는데 뭣보다 단골손님이 끊어지지 않는다나.

그래도 코로나19 시대는 무섭다. 한 번은 자동차 고칠 일이 있어 그 동네 현대카센터를 들렀는데 바로 옆 음식점이 대낮에도 불이 꺼졌다. 손님이 들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두 달 전에 생긴 회 센터는 개업할 때 손님이 꽤 드는가 했는데 왔다 갔다 하며 보면 썰렁하기만 하다. 아홉 시 남짓 하면 벌써 사람들 통행이 줄어들어 버리니 길가 행상들, 순대도 팔고 치킨도 팔고 떡볶이도 파는 분들도 어디 갔는지 모른다.

보통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이 은평구 성모병원에도 확진자가 나타나 이틀인가 폐원을 하기도 했다. 벌써 그게 2월 하순쯤이었으니 벌써 한 달도 넘었지만 그 직후 시장에 인적이 드물 정도였으니, 코로나 공포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출퇴근 시간이 아주 편해진 것만은 반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울 중심가로 통하는 외줄기 병목길이 차량 통행이 확 줄어들었다. 음식점에 가도 사람들 띄엄띄엄 앉았으니 시끄럽지도 않고 남의 타액이 날아들어 올 걱정도 없다. 모든 게 인기가 없어지니 아파트 값도 내려앉는 분위기라고도 한다.

코로나19가 유행처럼 몰려왔다 가면 모든 게 원상회복 되려나? 사람들은 경기가 브이(V) 자를 그리지 않고 엘(L)을 그릴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이 모든 코로나19 ‘평온’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정작 호랑이는 코로나19가 아니라 뒤 따라 오는 경기불황일 것이다.

4월이 되자 여기 은평구 불광동 로터리에도 선거운동 차량이 나타났다. 트럭 위에 서서 내 쪽으로 깊은 절 올리는 분들이, 나라 일을 정말로 제대로 해주시기를 바란다. 힘들디 힘든 시절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