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옛 건물과 숲은 라트비아 최고의 매력

리가의 옛 시가지는 보존이 잘 돼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리가의 옛 시가지는 보존이 잘 돼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 수리점을 찾아 헤매고, 부츠를 수선하다

오토바이를 가지러 BMW 모토라드에 다녀왔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한 시간쯤 담당자를 기다린 다음에야 찾을 수 있었다. 라트비아 모토라드의 문제점은 미캐닉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제외하고 저것만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게 국내라면 가능했을 텐데 철저하게 손님과 미캐닉 사이에 소통은 할 수 없었다. 숙소 직원에게 소개 받은 곳으로 오토바이를 끌고 갔다. 시내 반대편에 수리점이 있어 겸사겸사 리가의 전체적인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옛 건물들과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은 리가의 매력. 도심 개발이 한창이지만 구시가지는 잘 보존되어 있고 그걸 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도 많은 듯하다.

모토라드를 뒤로 하고 찾아간 수리점 이름은 ‘탠더스’. 미캐닉 마르씨가 로시를 보더니 문제없이 고칠 수 있지만 지금은 작업이 어렵고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란다. 작은 작업장 안에도 밖에도 대기하고 있는 오토바이가….

 

리가의 옛 시가지는 보존이 잘 돼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리가의 옛 시가지는 보존이 잘 돼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어쨌거나 함께 교체하거나 손 봐야할 부품에 대해 확인했고 예약했다. 걱정 말라고 하니 걱정은 털어버리는 걸로. 숙소에 돌아와서 밑창 벌어진 부츠를 들고 구두 수선점을 찾아가 맡겼다. 이탈리아 본사에 가려던 계획은 접었다.

오래된 건물 1층에 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꼭 100년 전으로 세월을 거슬러가는 기분이었다. 양쪽 모두 수선하는데 드는 비용은 10유로. 수선공 할아버지께서 금요일에 찾으러 오라고 하셨다. 오토바이 수리를 마칠 때까지 최대한 다음 여정에 차질 없도록 그동안 불편했던 건 매일 하나씩이라도 해결하기로. 거의 한달 내내 입었던 슈트를 세탁하고 국립미술관에 가볼 생각이다. 두 군데 헌책방을 찾았으나 문 여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두 문을 닫았다. 여기도 나처럼 불량한 책방지기이거나 형편이 어려운 것이겠지. 러시아를 지나오면서 모스크바에서 딱 두 명 책 읽는 사람을 봤고, 리가에선 아직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어디든 책 읽는 사람들이 소멸하고 있는 증거일까.

리가 인구는 65만 명(광역 100만 명)정도.

라트비아 전체 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 제정 러시아와 소련으로부터 두 번 독립했다.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나쁜 편이지만 현재 리가 인구의 30퍼센트는 러시아인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리가는 잘 가꾼 숲과 운하를 쉽게 볼 수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리가는 잘 가꾼 숲과 운하를 쉽게 볼 수 있다.

◇ 여유롭게 걷기 좋은 도시, 리가

리가에서 5일째. 만약 사고 없이 달렸다면 폴란드를 지나고 있었을 테다. 슈트를 세탁해 널고 짐을 다시 정리했다. 사이드 박스 하나가 없는 상태라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최소한으로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줄일 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너무 많은 것을 이고지고 살고 있는지도. 올드 리가(옛 시가지)를 걷다 이대로 미캐닉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필요한 부품을 유럽 어디론가 받아서 직접 수리하기로 했다. 우선 계기판 지지대와 양쪽 외장 카울, 앞 오른쪽 방향 지시등, 그리고 사라져버린 몇 개의 볼트와 너트만 있으면 달리는 데 문제가 없으니. 계속 리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간 다시 러시아까지 돌아가는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리가에 있는 공구상가에서 재료를 사서 임시 조치해둔 곳을 보강해 부품 받을 곳까지 달리기로 했다. 공구상가에 가면 무언가 쓸만한 재료들이 있을 것이다.

리가는 여유롭게 걷기 좋은 도시다. 인구가 65만 명(광역 100만 명)정도. 라트비아 전체 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 제정 러시아와 소련으로부터 두 번 독립했다.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나쁜 편이지만 현재 리가 인구의 30퍼센트는 러시아인이다.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또 반대로 러시아와 가까이 있고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러시아에 진출하려는 회사나 자본이 라트비아를 교두보로 삼는다는 글을 읽었다.

오토바이를 수리하기 위해 찾았던 ‘탠더스’.
오토바이를 수리하기 위해 찾았던 ‘탠더스’.

리가 시내에 즐비한 고급 차들과 건설 현장이 그 증거. 생산 시설이 거의 없음에도 부를 누리려면 무역, 금융, 관광, 서비스업 외에는 길이 없다.

지리적 이점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번영과 침탈의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북해를 끼고 러시아와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독립했음에도 라트비아로선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처지리라. 1991년 독립 이후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들어간 것은 최근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우크라이나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리가가 가진 도시의 품격은 옛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올드 리가와 도시를 아늑하게 만드는 오랜 숲인 듯하다. 건물보다 숲에 더 점수를. 왜 내가 사는 동네는 가로수 가지치기를 그렇게 매정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참 좋을 텐데.

리가 자동차 박물관. 리가를 여행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리가 자동차 박물관. 리가를 여행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 전설의 경주차, 오토유니언 타입 C/D

오토유니언 타입 C/D가 리가에 있다고! 입장료 10유로쯤이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우디의 전신 오토유니언이 만든 전설의 ‘아름다운’ 경주차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덤으로 옛 오토바이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리가 자동차 박물관은 시내 중심가에서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굳이 타입 C/D가 아니더라도 입장료를 낼만큼 충분한 전시물과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적인 자동차를 완벽한 상태로 복원하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물론 그 중 백미는 C/D. 이곳에서 보니 1930년대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다들 특별한 능력을 가졌던 모양이다. 1930년대로 넘어오면서 자동차의 성능도 비약했지만 디자인만 놓고 보면 성능의 발전 이상으로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극도로 끌어올린 시대였던 것 같다.

리가 자동차 박물관과 이르쿠츠크 앤티크 모터사이클 박물관에서 본 것만으로 글 한 편을 쓸 수도 있겠다. 두 곳 모두 우연히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관람했는데 오토바이나 자동차(작고 실용적인 차를 좋아한다. 러시아에서 LADA 니바 보고 반했다)를 좋아하다보니 이런 류의 박물관은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디자인과 성능으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오토유니언 타입 C/D.
디자인과 성능으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오토유니언 타입 C/D.

박물관을 포함한 전시공간은 단순히 소장품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건물만 지어 놓고 계속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소 도시의 박물관이라면 현재와 소통할 수 있는 분야, 소장품과 내용을 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내가 사는 동네를 언급해서 그렇지만 한동안 문을 닫았던 청동기 박물관이 그랬다.(그곳에 청동기 박물관을 짓는 게 적절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옛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단순히 옛 유물과 복원품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박물관을 다녀오고 리가 중앙 시장에 가서 밥도 사먹고 체리도 사먹고 내내 쏘다녔다. 일주일쯤 있으니 리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한낮 기온은 30도, 위도가 우리보다 한참 위인데도 날씨가 뜨겁다. 아래쪽은 얼마나 더울지. 내일이 리가에서 마지막 날이다. 내가 있는 방(4인 도미토리)엔 여행자들이 계속 바뀌어 하이와 굿바이를 반복 중. 모레 아침 일찍 폴란드를 향해 출발할 계획이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