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br /><br />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이 감정표출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감정표현이 서툰 나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기쁨의 표현이야 다소 부족해도 그만이지만 슬픈 일을 당하여 울어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으면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른 봄날, 평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는데, 문제는 한 번 슬피 울고 난 그 다음부터였다. 외아들인지라 십대의 철부지가 상주가 됐고,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곡하라면 ‘애고애고’ 곡을 했고 절하라면 절했다. 조문객이 올 때마다 곡을 하면서 마음의 고민이 조금씩 깊어졌다. 곡을 하면 당연히 눈물이 함께 나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빈소에서 간단없이 곡을 하며 할아버지 별세 때 상주인 아버지께서 상을 치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굴건제복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구슬피 곡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선명히 기억됐다.

천성적으로 감정표현이 서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보고 느낀 것, 배운 것은 세월이 가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일희일비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배워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 기쁨도 슬픔도 절반만 표현, 나머지 절반은 삼키고 만다. 사나이는 세 번 운다. 세상에 올 때 울면서 태어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 운다던가? 하여간 함부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사나이답지 못한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정작 울어야 할 자리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는 몹시 난감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눈물이 많아졌다. 세상사 가슴 아픈 일이 많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이 노화의 일부라 한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자는 점차 남성화된다.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조금만 감동하여도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특히 부모님이나 치매에 관한 내용일 경우 더욱 심하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는 펑펑 울었다. 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 되어서일 것이다. 하여간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당혹스럽다. 감동할 일만 많다면 그까짓 눈물이야 얼마든 쏟을 각오가 되어 있으나, 정치판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이다. 정치는 감동이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며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과정이 정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는 공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문화의 시대에 문화예술에 관한 공약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다. 포항 송도해변에 서 있는 ‘평화의 여신상’ 하단에 1968년도 포항시정지표가 새겨져 있다.

1. 명랑한 문화도시, 2. 건전한 항만도시, 3. 풍요한 공업도시.

배고픔의 해결이 지상과제였던 60년대에도 ‘명랑한 문화도시’가 시정지표의 첫 번째였다. 지금 보아도 얼마나 멋진가!

문화가 미래의 성장동력인 시대, 일상이 문화가 되는 포항을 약속한 선량은 누구인가? 두 눈 부릅뜨고 살펴서 그에게 표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