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 경마대회 첫 여성 우승
‘미셸 페인’ 이야기 다룬 ‘라라걸’
여성 기수 무시하는 현실 속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최정상에 올라

영화 ‘라라걸’. /판씨네마 제공
결승선을 300m를 앞둔 지점.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 무리 속에서 찰나의 틈을 발견하자, 최대한 스퍼트를 끌어올리며 치고 나간다.

경쟁자를 하나둘씩 제치고 마침내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을 때, 호주 멜버른 컵 155년 역사도 바뀐다. 2015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멜버른 컵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미셸 페인 이야기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라라걸’은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다룬다. 1861년 시작된 멜버른 컵은 경기 당일 호주 전체를 멈추게 할 만큼 유명한 호주 최대 경마대회다.

세상의 편견과 고난을 딛고 마침내 승리하는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적은 팀이나 선수)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들을 때마다 감동적이다. 승리의 과정이 고단할수록 감동의 진폭도 커진다.

페인의 실제 삶 역시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생후 6개월 만에 엄마를 잃은 그는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기수로 성장한다. 3천200번의 출전, 361번의 우승, 7번의 낙마, 16번의 골절이 그의 이력이다. 2004년에는 낙마 사고를 당해 전신 마비까지 경험하지만, 재활에 성공해 다시 말에 오른다. ‘경마는 힘’이라며 여성 기수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그곳에서 그는 오로지 실력과 훈련으로 최정상 자리에 오른다.

영화는 스포츠 영화 특유의 영웅주의는 가급적 배제하고,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집 이야기를 하듯 친근하게 들려준다. 단순한 성공 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끈끈한 가족애가 돋보이는 가족 드라마이자, 한 개인의 성장 드라마로 확장한다.

페인의 성공 뒤에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혹독한 가르침에도 정신적 버팀목이 돼준 아버지와 항상 응원해주는 언니와 오빠들, 특히 다운증후군을 앓지만, 최고의 마필관리사이자 ‘절친’인 친오빠 스티비가 함께했다.

페인 가족은 스티비 역시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덕분에 스티브도 자신을 장애인이라는 한계에 가두지 않고 성장해 업계 최고 마필관리사로 인정받는다. 영화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페인의 실제 친오빠가 스티브로 출연했다.

페인은 ‘프린스 오브 펜젠스’라 불리는 말을 탄다. 경주마로선 비교적 많은 나이인 6살인 데다, 숱한 부상마저 겪어 우승 확률은 고작 1%였다. 그러나 페인은 자신의 삶과 똑 닮은 말을 선택해 결국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린다. 스포츠 영화로서 본분도 잊지 않는다. 박진감 넘치는 경마 레이스를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여성 중심 서사에, 여성 작가와 감독이 참여한 여성 영화다. 영화 ‘쥬드’ 등에 나온 호주 출신 배우 레이철 그리피스가 50세 나이에 메가폰을 잡은 장편 데뷔작이다. 배우이자 각본가인 엘리스 맥크레디가 각본을 썼고, ‘핵소고지’ 등에 출연한 배우 테레사 팔머가 주연을 맡았다.

원제는 ‘라이드 라이크 어 걸(RIDE LIKE A GIRL)’로, 여자다움(Like a gir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LIKEAGIRL)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우리말 제목은 앞 자를 따서 ‘라라걸’로 지었다.

미셸 페인은 우승 직후 이런 소감을 남겼다.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방금 우리가 세상을 이겼네요.” ‘여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한 방에 날린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