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헌시인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그렇다 봄이다. 온통 꽃밭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지만, 바야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이다. 자연은 시간에 맞춰 때를 놓치지 않고 그렇게 왔다.

아침 출근길에도 벚꽃들이 만발하였고 이제는 분분히 지고 있다. 현실에 돌아오면, 전염병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은 왔지만, 우리는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봄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봄의 정치’라는 시에서 고영민 시인은 노래한다.

“봄이 오는 걸 보면 /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총선은 봄의 절정에 투표일을 정했을까? 이 봄의 절정에 선거운동원을 위한 배려일까? ‘봄과 정치’는 아무래도 특별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많은 후보들이 말하는 그 희망과 정치는 간격이 아득히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겨울을 보낸, 아직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봄을 기대하고 있다. 겨울이 혹독하면 할수록 더욱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이 암담하면 할수록 더욱 정치를 기대하게 된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희망의 새 학기를 맞았지만,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정치를 모른다. 지금까지 정치 가운데, 정치의 일상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정치를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어느 당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리하여 나는 누구를 뽑아라, 누구를 뽑지 말아라, 하는 지식도 없어,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5 총선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투표를 잘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살고,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내 의지에 따른 투표를 할 것이고, 나의 권한을 행사할 것이다.

끝으로 소설가 루쉰의 ‘생의 기로에서 청년들에게’라는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청년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꼭 대답하라고 한다면 첫째는 생존해야 하고, 둘째는 입고 먹어야 하며, 셋째는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이 세 가지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반항하고 박멸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