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는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30년 넘도록 단순한 삶을 반복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8시 15분까지 출근하죠. 은행 경비원입니다. 중요한 업무는 출근하는 지점장 뢰델씨에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노엘은 단조로움 그 자체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메마른 삶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며 지속하는 것이 노엘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 루틴이 깨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조나단 노엘은 어느 날 출근하려 집을 나섰는데 복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도저히 비둘기가 있는 복도를 지나 출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죠.

“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산을 펴서 비둘기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날 하루 그의 삶은 엉망진창입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안과 공포로 노엘을 이끌지요. 지점장에게 인사하는 일조차 구멍 내고 맙니다. 하루가 송두리째 엎어집니다. 비둘기가 무서워 집을 떠나 호텔 신세를 진 그는 불안 끝에 자살하기로 결론을 내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노엘은 안정을 찾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비둘기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공포는 착각이었지요.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노엘은 다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무너져내린 우리 일상도 세상을 뒤덮은 공포의 그림자도, 비둘기 사라지듯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비록 우리 일상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엇이라 해도, 그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체험했기에.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