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영공무원
박근영 공무원

“아! 이거 참…. 강사는 뭐 하는 거야!”

도로주행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신호가 짧은 교차로 탓에 바짝 붙어 출발하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했다. 짜증이 일었지만 도로주행 시험을 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 모드로 돌아간다.

1999년 가을,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기어 변속 후 차를 출발시켰다. 식은땀이 흘렀다. 첫 신호등에 도착하자 긴장이 거의 풀렸다.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코스를 순조롭게 돌고 결승점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무사히 마쳤다. 90점은 가뿐하리라. 천만의 말씀! 감독관은 채점표를 보며 내 실수를 하나하나 짚었다. 출발할 때 형식적으로 차량을 돌아본 것, 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 한 번도 그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평소처럼 탑승 전에 바퀴를 몇 번 톡톡 차고 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알고 보니 차량 주위에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는 없는지, 바퀴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운전석에서는 후방을 살피고 사이드미러로 양옆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거울을 째려보며 카레이서가 정면을 주시하듯 눈을 치켜떴다. 채점표를 보던 감독관에게 내 비장한 눈빛이 보일 리 없었다. 시동 걸고 출발하면 그만인 줄 알았지 이런 절차로 쇳덩이와 내가 세상의 안전을 도모하는 심오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날 내 점수는 70점이었다.

저녁 6시, 먼저 집에 가려는 차량들이 무례한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따로 없다. 내 퇴근길은 램프 구간을 몇 번 지나 차선을 여러 차례 변경해야 한다. 차선을 바꿀 때는 옆 차 속도를 계산해 동물적 감각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이때 내가 ‘끼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는 방향지시등으로 한다. 일명 깜박이. 옆 차선에서 누군가 깜박이를 켜고 진입하려 하면 나는 뒤에서 오는 차간 거리와 앞차와의 간격을 가늠해 속력을 살짝 줄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38조1항에 명시된 운전자의 의무다. 차선을 변경할 때나 좌회전, 우회전, 유턴할 때도 반드시 켜야 한다. 깜박이는 여유를 두고 켜는 것이 좋으며 대략 6초면 옆 차선의 차들이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얌전히 가던 옆 차가 깜빡이 없이 칼치기로 들어올 때는 그 운전자의 손가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에 심적 동요는 없다. 대신 화답하는 뜻으로 경적을 기다랗게 울려준다. 상대 운전자는 사과의 뜻으로 비상등을 몇 번 깜박거린다. 비상등을 켜려면 손을 뻗어야 하지만 방향지시등은 손가락만 뻗치면 닿는다. 자동차는 인체공학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날 도로주행 감독관은 내가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바로 끄고 차선 진입을 했다고 감점의 이유를 말했다(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차선을 바꾼 기억조차 없는데 어찌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끈 기억이 있을까? 두 차례나 그랬으므로 깜빡이 부문에서 내가 대량 실점을 했단다. 그 경험은 각인 효과가 있어 나는 이후로 확실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그 시절은 유난히 초보 운전자에게 가혹했다. 깜박이를 켜면 일부러 끼어들지 못하게 속력을 내는 일이 많다며 절대 깜박이를 쓰지 말라는 말까지 돌았다. 오죽하면 ‘여러분이 몰랐던 차의 기능’이라며 깜박이 켜기에 관한 유튜브 영상까지 나왔을까? ‘깜박이 켜기’ 운동도 있었다.

운전자는 차를 흉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깜박이는 남을 배려하고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무례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자를 보며 실력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보복 혹은 난폭 운전을 일으킬 수 있다. 깜박이 사용은 주변 차량에 내 차의 방향 정보를 제공해 양보를 유도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나와 이웃을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동차의 훌륭한 안전장치다. 운전대 왼쪽에 튀어나온 그것을 애용하는 일은 타인을 위한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