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고향 영덕 바다를 그리워하는 경기대 권성훈 교수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고통을 위로해준다고 믿는 권성훈 교수.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는 “성인은 세상 어떤 곳도 고향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현재 서있는 곳이 태어난 곳만큼이나 귀한 자리이니, 거기서 세상과 인간을 위한 양심적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일 터.

하지만 모두가 빅토르 위고처럼 살 수는 없는 일. 보통의 인간들에게 고향이란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성훈(50)의 고향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푸르른 바다와 산’을 품에 안은 영덕.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40년을 살고 있지만, 권성훈에게 영덕 병곡면은 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틋한 마을이다. 언젠가는 돌아가 자신의 마지막 문학적 정열을 쏟아붓고 싶은.

고향 떠나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처음 본 연탄을 신기해하던 열 살 아이가 타향에서도 그늘 없이 자라 대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영덕 사람’ 권성훈 이야기다. 그를 만나 ‘몸의 고향’ 영덕과 ‘마음의 고향’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계획과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더불어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떠나온 고향 병곡

엄마 같던 늙은 소의 눈빛 잊히지 않아

트럭 짐칸서 수원으로 오던 기억도 선해

대학 강단서 시평론· 시조창작 등 강의

이상 등 현대시인 정신분석화 집필 중

앞으로 고향 배경으로 한 연작시 쓰고파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경기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있다. 교양학부에선 문학을, 국문학과와 문예창작 전공 학생들에겐 현대 시론과 시평론을 강의한다. 지난해 우리 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한류문화대학원이 생겼는데, 거기선 시조 창작과 현대 시조론을 강의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개강이 늦어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동영상 강의로 인해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데.

△대면 수업이 아닌 비대면 수업을 동영상 강의로 3주째 진행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달리 말하면 ‘인간학’이다. 기본적으로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문학을 매개로 인간의 삶을 서로 교환해야 하는데,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강의 동영상을 교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서 방송통신대와 사이버대학 교수님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빨리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할 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최근에 낸 책은 뭔지. 그리고, 상을 받기 위해 문학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의 문학 관련 수상 이력도 궁금하다.

△지난해 세 번째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를 냈다.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창작기금으로 출간됐다. 운 좋게도 세종우수도서로 선정됐고, 2020년 ‘작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집’으로도 선택됐다. 감사한 일이다. 그간 펴낸 책은 연구서와 시론, 평론집 등을 합해 10권쯤 된다. 젊은 작가상, 한국예술작가상, 열린시학상, 인산시조평론상 등을 받았던 것도 행복한 기억이다.

-현재 쓰고 있는 책은.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문학치료’였다. 문학치료 이론에 적용되는 정신분석을 테마로 한국 현대시인 중 이상, 김수영, 박남철 등을 분석하고 있다. 그들 시 세계를 무의식의 소산으로 보고 정신분석화 하는 작업 중이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얼마나 산 것이고, 잊을 수 없는 그곳에서의 추억은.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다. 열 살이 되던 해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산과 바다, 꽃과 비를 좋아하는데 그것들이 내가 어렸을 때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초등학교 1학년 봄날의 기억인데, 갑자기 천둥이 치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산에 묶어둔 소를 찾아 같이 내려오는데, 천둥소리에 무서워하는 나를 안타깝게 돌아보던 늙은 소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엄마의 눈빛 같았다.

-중고교 시절엔 ‘문학소년’이었나. 영향 받은 작가와 작품이 있는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집이 가난해 서점에서 책을 사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 방과 후 책을 대출해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가장 행복했다. 닥치는 대로 독서를 했기 때문에 딱히 영향을 받은 작가는 없지만, 있다면 불특정 다수의 책 모두가 나를 가르친 선생님이자 친구였다.

-수원에 정착할 무렵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파편 같은 게 있는지.

△형제들과 트럭 짐칸에 타고 부모님을 따라 수원으로 왔다. 저녁에 어머님이 연탄을 피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장작을 때며 살다가 검정색 연탄이 하얗게 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돌아보면 웃음 나오는 추억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한다는데,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영덕에 내려가 고향을 배경으로 한 연작시를 쓰고 싶다. 영덕은 내 작품에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이 느껴진다. 상상의 두레로 언어의 물을 퍼 올리며, 현실 바깥에서지만 나는 고향과 매일 만나고 있다.

-시와 시조, 평론까지 문학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인간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그냥’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냥이라는 단어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혹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 담긴 것 같다. 작품을 쓰면서는 항상 어떠한 형식과 구성이 더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창작뿐만 아니라 연구에도 몰두하는 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연구를 통해 창작의 질을 높이고, 창작을 통해 연구의 장을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 바람은 시조의 활성화를 위해 연구와 평론을 좀 더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나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의미 없듯, 나 혼자 존재하는 세계 역시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은 같이 존재하고 함께 있기에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나를 있게 한 중요한 삶의 동력이다. ‘나의 길’을 가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고향 영덕을 소재로 작품을 쓴 적이 있는지.

△어릴 때 고향 바다를 두고 슬퍼하며 수원으로 이사했던 내 모습을 형상화한 게 있다. 아래 소개하는 ‘폐차’라는 시다.

다음 생애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십 년 살다 바다에 묻은 그 애도 그랬다

울음소리 수리도 않은 채 도로를 넘나들며

녹슨 바람에 이는 사월 파도를 태우는

밤은 밤을 열면서 떠돌아다녔다.

-인간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향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곳이 아닐까 싶다.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향 또한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예전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아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추상적 질문이다. 실용적 학문이 아닌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예술의 효용성은 필요와 불필요에 의해 규정되는 게 아니다. 느끼는 사람의 것이며, 감동을 받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모든 것이 허망하고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실용적 학문이 접근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할 때 ‘예술적인 어떤 것’이 우리 곁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대구·경북에 어떤 위로를 전하고 싶은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위대한 인간은 함께 살아남은 자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고향을 지켜온 힘이 재건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 과정에선 분리되거나 분열된 나와 너가 없고, 우리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열 살 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 번도 영덕의 푸른 산과 맑은 바다를 잊은 적이 없다. 신문과 방송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신음하는 대구·경북’이 거론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무쪼록 지혜와 힘을 모아 경북인의 위대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는 대구·경북에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위대한 인간은 함께 살아남은 자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고향을 지켜온 힘이 재건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 과정에선 분리되거나 분열된 나와 너가 없고, 우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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