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범종루 뒤로 보이는 스기나무. 응석사는 경남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에 위치해 있다. 

십여 년 전 아들이 공군 훈련병으로 있으면서 장문의 편지와 함께 보내온 벚꽃잎만큼 아련했던 꽃이 있을까. 훈련을 마칠 즈음, 꽃은 간 곳이 없고 무성한 나뭇잎처럼 성장해 있던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차는 진주로 달린다.

벚꽃이 만개하기에는 조금 이른가 보다. 연둣빛 새싹과 봄꽃들이 수런대는 시골길은 평범한 들판과 촌락을 지나 집현산 아래에서 싱겁게 끝나 버린다. 접근성이 좋은 응석사(凝石寺)는 신라 진흥왕 15년(55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문무왕 2년 의상대사가 강원을 열었고 그 뒤 나옹, 무학 등 이름난 고승들이 거쳐 간 대사찰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불상 밑에 숨겨둔 무기를 발견하고 많은 당우를 불살랐다고 한다.

절은 서너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이 육중하고 화려한 다포식 일주문을 붉은 동백꽃이 지키고 담장너머 경내는 온갖 봄꽃들로 생기가 넘친다. 우아한 백목련과 키 작은 수선화까지 시샘하듯 눈길을 사로잡는데 뒷산조차 온통 진달래로 붉다. 다투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청순한 봄꽃무리들, 두견화 향기에 귀촉도 소식이 궁금해서 오늘밤은 응석사도 몸살을 앓을 것만 같다.

계곡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탑들의 호위 속에서 봄꽃에 취한 마음 애써 진정시키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금강문 겸 범종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면 계단 위로 멀리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렬로 배치된 구조가 나를 더 경건하게 만든다. 보물이 있는 대웅전보다 바로 앞을 막아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스기나무 두 그루에 위압당하고 말았다.

불법을 수호하는 나무답게 큰 키로 낯선 이를 내려보며 점검한다. 잠시 긴장감이 흐른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곧게 뻗은 한 쌍의 스기나무는 큰 행사가 있을 때 괘불을 걸기 위한 용도로 심어졌다고 하니, 절의 당간지주인 셈이다. 처음 보는 이색적인 풍경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셔트를 눌러대다 끝내는 범종루 위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지척에 스님이 계시지만 차담을 청할 처지가 아니라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이 좋은 봄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까지 눌러쓴 방문객의 모습에 꽃들도 놀라지나 않을까 조심스럽다. 응석사의 보물은 계절에 관계없이 살아 있는 나무들과 돌담이다. 흔한 풀꽃조차 불심으로 가득하다. 불국토에 온 것처럼 구석구석 평화가 흐르고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응석사는 지나친 정갈함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풀꽃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돌담은 햇살에 몸을 말리며 응석사(凝石寺)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분위기와 느낌이 다른 돌담과 돌축대, 청이끼를 두른 돌담에서부터 큰 돌로 만들어진 웅장한 돌축대까지, 모두 예불소리로 다져진 사랑스러운 몸짓이 담겨 있다.

산신각과 나한전이 있는 마당에는 냉이꽃이 무리 지어 햇살에 반짝인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돌담 사이로 난 통로로 들어서면 허리 꼿꼿하게 세운 민들레가 씨앗을 품고 바람을 기다린다. 눈물겨운 광경도 잠시, 뒷산을 물들인 진달래가 유년의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끈다. 이 모든 풍경에도 독성각은 흐트러짐 없이 홀로 참선 중이다.

유서 깊은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잔잔한 평화 그리고 여유로움, 몸과 마음은 절을 둘러보는 사이 깨끗이 정화되었다. 올라 갈 때는 봄의 정취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내려오면서 산신각과 나한전 사이에 서 있는 아름다운 쌍사자 석등을 보았다. 그 아늑한 터전에서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대웅전을 떠올린다. 300년 된 은행나무가 법당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보물 제 1687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앞에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예상했던 대로 길어지자, 일상을 지배하던 긴장과 불안감도 차츰 둔화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를 좀 더 자중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로 몰고 간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언가로부터 위협받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임을 암시한다. 오늘 처음 법당에서 백팔 배를 한 남편의 행위 역시 그런 의미였으리라.

법당에 들어오지도 않던 남편이 삼배의 예를 갖추고 드디어 백팔 배를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우연히 백팔 배를 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해 준 남편이 고맙다. 응석사 대웅전이 그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 우리의 기도는 부처님의 영험함을 기대하기보다 스스로와 삶에 대한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위한 다짐이며 약속이다.

백팔 배를 마친 남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말없이 법당을 나오는 우리를 맞아준 것은 관음전 뒤 언덕을 지키는 무환자나무였다. 통일 신라 말 9세기경 도선국사가 무환자 열매를 먹으면 전염병을 예방하고, 가정의 나쁜 일을 쫓아준다하여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심었다고 한다. 무환자 열매로 만든 염주 하나쯤 곁에 두고 싶다.

늘 숙제하듯 절을 찾아 나섰던 발걸음에 이제서야 조금씩 힘이 실린다. 매주 절 기행을 하는 동안 백팔 배를 함께 하겠다는 남편의 약속, 고통과 시련도 잘만 다스리면 꽃을 피우기도 한다. 오늘은 봄꽃보다 사랑스런 날이다. 인생은 그런 맛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