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살다 보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때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작품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큰 사건과 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입장에 서서 작품에 접근한다. 그러나 작품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로 불릴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 쓰는 이유는 디테일에서 작품의 의미가 풍부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감상의 두 입장을 소개했다. 아무리 굶어도 양심을 지켰어야 한다는 관점은 보수적 관점이고, 생계형 범죄이니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진보적 관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점만으로 작품에 다가가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작품을 학생들과 같이 소리 내어 읽다가 하인이 여드름을 만지는 장면이 네 번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쪽짜리 짧은 단편에서 여드름이 네 번이나 나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읽으며 여드름에 주목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 여러 번 읽으며 참고 문헌을 찾다가 ‘유쾌한 소설로서의 라쇼몽’이라는 논문을 발견했다. 이 어두침침한 소설이 유쾌하다니 깜짝 놀랐지만, 논문의 저자는 이 여드름을 삶의 의지로 보고 그것을 유쾌함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아쿠다카와는 이모 손에서 자랐는데, 이 작품을 쓰던 시기는 당대 규범에 충실했던 이모의 반대로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고 심한 좌절에서 막 벗어나던 시기였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 속에서나마 더 이상 사회 규범에 짓눌려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메시지 전달에는 언어가 7% 차지하고 사소한 행동이나 태도, 표정 등의 비언어적 요소가 93%로 훨씬 더 많이 작용한다는 메라비언 법칙이 있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표정이나 사소한 행동, 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법칙을 작품을 이해할 때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작품 전체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보여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나 사건뿐 아니라 디테일한 설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밤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시간이다. 시체가 늘비한 라쇼몽 누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할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하인은 여드름을 계속 만진다. 이런 디테일을 알아채면 하인의 심리 변화와 행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작품에서 다루는 문제가 무엇인지, 작가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관점이 달라도 그런 발견은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다.

하인의 가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은 토론만으로는 작가가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 상황의 디테일을 알아채고 공유하다 보면, ‘너는 어느 편이냐’고 관점을 묻는 것보다 우리는 더 많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