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때로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클북에서 작년 ‘내 꿈은 퇴사다’라는 책을 출간할 때,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묘사해 대만에 수출 계약을 하는 등 호평을 받은 책입니다.

20세기 초 스위스에 한 유명 작가가 활동했습니다. 쓰는 책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전성기에 이른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카를 융의 제자 랑에게 심리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가 내린 처방은 이렇습니다. ‘스스로를 벗어나, 자신을 관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라.’

조언을 따르기 위해 작가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 지금 내가 쓴 작품이 작품 자체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명성 덕분에 내용과 무관하게 팔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새로운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책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1919년, 그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놀랍게도 자신의 전작(前作)을 모두 뛰어넘습니다. 이 작가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 그가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발표한 작품은 그 유명한 ‘데미안’입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중 최고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스티븐 킹입니다. 비평가들은 스티븐 킹이 지나치게 다작(多作)을 한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에 발끈한 스티븐 킹이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자 비평가들은 열광합니다. 스티븐 킹을 뛰어넘는 신인 등장! 이런 표현을 쓰면서 말이지요.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스티븐 킹은 비평가들을 골려주었습니다.

이름이 갖는 의미와 무게가 있습니다. 작가들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새 이름으로 나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며 새 출발 하는 것은 비단 작가들만의 특권이 아니겠지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