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재 학

어떤 옥탑방에는 밤사이 신발이

가지런하다

집 나간 아들이 몰래 들어와

잠만 자는 것이다

물론 그 집 식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청년이 화가지망생이란 것도

놀랍지 않다

그 집 옥상에서 열린 전람회는

얼마나 많은 색깔을 구워냈던가

양치식물과 빗방울은

그에겐 푸른색에 가까운 내재율이다

비밀이 시작하는 것이다

간혹 내 중년도 청년에 의해 푸른 추상화가 되곤 했다

그곳이 머위잎 녹음처럼 부드럽기에

셀로판지를 통과하는 햇빛은

다시 햇빛의 바늘귀를 지나간다

그건 생의 조름을 깁는다

옥탑방의 목록에 새털구름이

떠다닐 무렵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물탱크가 들어선 것도

그쯤이다

나도 한때 청춘을 어딘가 구겨 넣었지만

노란색 물탱크는 비가 오지 않아도

안간힘으로 새 것이다

화가 지망생이 살던 옥탑방이 철거되고 물탱크가 섰다고 말하는 시인은 청년이 그린 그림의 푸른색이 물탱크의 노란 색으로 변한 데 시의 중심을 두고 있음을 본다.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청춘의 시간을, 그 열망의 시간마저 쉬 지나가버리는 세월의 허망함을 아파하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