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사라진 봄과 파블로 네루다 시인

평화롭고 고요한 라오스의 메콩강변. 이런 풍경 속에 잠기고 싶은 봄날이다.

중국과 이란이 위기로 휘청거리더니, 이젠 미국과 이탈리아,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스페인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로 인해 국가가 통째로 멈춰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거대도시 뉴욕과 런던 거리에선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고, 이탈리아 외곽 지역 노인들은 의료진을 찾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여름에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은 전례 없이 연기가 진지하게 논의됐다.

프랑스 대통령과 영국 총리는 연일 TV에 나와 “사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고 집에 있어 달라”고 목소리 높여 호소한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닌 중동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초토화 된 실정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아사(餓死) 직전”이라는 호소를 정부에 보내고 있고, 최근엔 이웃과 친구들끼리의 다감한 커뮤니케이션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대한 질타와 조롱도 비등한다.

여기에 멀쩡하게 생겨서 더 경악스런 청년 한 명은 가장 악질적인 방식으로 미성년자들의 성을 착취해 신문과 방송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얼굴을 드러낸 조주빈(25)은 스스로를 “악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너는 악마도 아니고 더러운 세균일 뿐”이라며 분노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
파블로 네루다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예를 들면 밤은 별이 많다.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 멀리서, 파랗게라고 쓸까

밤하늘은 저 멀리서 돌며 노래하는데
나는 이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난 그녀를 사랑했었지. 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었지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는 내 품에 있었지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난 몇 번이고 그녀에게 입 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었지. 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었지
그녀의 그 커다랗게 응시하는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문득 그녀가 없다는 생각. 문득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
황량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황량한 밤

풀잎에 이슬이 지듯 시구 하나 영혼에 떨어진다.
무슨 상관이랴. 내 사랑이 그녀를 붙잡아 두지 못한 걸
밤은 별은 많지만 이제 그녀는 내 곁에 없다

멀리서 누군가 노래한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어버린 것만으로 가만있지 못하는가
더위를 잡으려는 듯 내 눈길이 그녀를 찾는다
내 마음이 그녀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내 곁에 없다

이 많은 나무들을 하얗게 깨어나게 하던 그 밤, 그 똑같은 밤
우리는 그 때의 우리는, 이제 똑같은 우리가 아니다
이제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그땐 사랑했었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이를 바람을 찾곤 했었지
남의 사람이 되었겠지. 남의 여자, 입맞춤의 이전처럼
그 목소리. 그 맑은 몸매. 그 끝없는 눈길
이제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그땐 사랑했었지
사랑은 그토록 짧은데 망각은 이토록 긴 것인지
오늘 같은 밤에는 그녀가 내 품에 있기 때문이야.

그녀를 잃은 내 마음은 가만있질 않아
비록 이것이 그녀가 주는 마지막 고통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라고 할지라도.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리운 풍경

대체 2020년 봄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봄이 품에 안아 데리고 오는 희망과 꿈이라는 분홍빛 단어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들려오는 건 온통 짜증 섞인 불만과 안타까운 비명뿐.

식구와 연인의 손을 잡고 벚꽃과 매화 흩날리는 강변에서 소박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환히 웃던 지난해 봄이 현실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 전체가 비극적으로 꾸며진 시뮬레이션 세트장 같다.

불투명한 미래와 비루한 오늘은 자연스레 좋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에 ‘행복한 꿈’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한 후 아주 길고 긴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을 정도다. 올해 봄이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기자 하나만은 아닐 듯하다.

떠올려보면 행복한 꿈같았던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른하고 평화로운 봄날 백일몽 같은 기억들.

몇 해 전 라오스를 여행했을 때다.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밝은 미소로 타인을 대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에 매료됐다.

철없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시시때때로 조용한 웃음을 보여주던 라오스.

낡은 버스에 올라 그 나라 남부에서 시작해 북부까지를 2주쯤 돌아다녔다. 당연지사 많은 이들을 만났다.

시장에서 남편이 사준 중국산 청바지 하나에 감동해 눈물 흘리던 어린 신부, 외국인이 준 조그만 사탕 하나를 동생에게 양보하며 쑥스러워하던 초등학생, 자식을 11명이나 둔 마흔아홉 살 농부까지. 그들 모두는 빈한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행복해보였다.

‘동남아시아의 젖줄’로 불리는 메콩강과 그 지류들. 흙빛으로 숨죽이며 수천 년을 흘러온 라오스의 강이 선물한 평화로움과 고요함.

저물 무렵 강 언덕에 드러누운 기자는 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1973)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떠올렸다.
 

라오스의 소승불교 사원.
라오스의 소승불교 사원.

▲희망과 꿈을 빌던 라오스 동승(童僧)처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이 상을 선정하는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네루다의 작품을 “고통 앞에 선 인간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평했다.

생후 2개월 때 어머니를 잃은 불행한 유년,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10대 시절, 눈앞에서 봐야했던 스페인 내전의 광기와 처참함, 정치적 지향으로 인한 오랜 망명 생활까지. 네루다의 삶은 희망과 꿈을 떠올리기 힘든 나날로 점철됐다. 그러나 시인은 끝끝내 인간의 당연한 권리인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그는 언제나 희망으로 건너가는 ‘꿈’을 노래했다. 때론 감미로운 목소리로, 때로는 거친 함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이어지는 전개는 결코 어둡지 않다. 이 시에선 유독 ‘그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게 ‘희망’과 ‘꿈’의 은유라는 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네루다는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희망과 꿈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마지막 행처럼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라고 할지라도’ 가치 있는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

시인만이 아닌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포악한 바이러스와 추악한 욕망에 눈먼 악마를 앞에 둔 이런 막막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그날, 강변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길. 소승불교 사원에서 조그만 손을 모아 합장하는 어린 라오스 승려들을 봤다. 그 동승들 또한 분명 희망과 꿈을 빌고 있었으리라.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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