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전통시장 속 ‘젊은 카페’ 죽도소년 주인장 김희준 씨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된 카페 죽도소년 운영자 김희준 씨.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된 카페 죽도소년 운영자 김희준 씨.

자영업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다. 비단 대구·경북만이 아니라 전국이 마찬가지다. 당장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짧으면 5~6개월, 길다고 해도 1~2년 사이에 간판을 바꾸는 소규모 식당과 카페가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러하니 포항 죽도시장 골목길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카페 ‘죽도소년’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1층과 2층을 합쳐 20명을 수용하기 힘든 작은 찻집이지만, 각종 SNS에서 확인 가능한 죽도소년의 인기는 어떤 ‘핫 플레이스’보다 뜨겁다.

주말이면 고풍스런 한복집 등 최소 20~30년 이상 된 노포(老鋪) 사이에 돌올하게 들어선 젊은 감각의 카페로 경북과 부산은 물론, 멀리 강원도와 서울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이 정도면 자영업으로 이룬 ‘작은 성공’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바이러스의 난동은 언젠가는 끝이 날 터. 죽도소년을 운영하는 김희준(45)씨는 “상황을 마냥 비극적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얼핏 봐도 1천 권은 넘어 보이는 책과 수백 장의 음반으로 채워진 ‘카페 죽도소년’을 찾아 김희준 씨를 만났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완연한 봄의 향기 속에서 카페 운영의 노하우와 어머니뻘의 전통시장 상인들과 불화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 카페를 차리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묻고 그에 관한 답을 들었다.

 

30대 시절엔 잘나가던 학원 원장서
‘스토리 마케팅’ 카페 주인으로 변신
시내 중앙상가 이색카페로 ‘입소문’
친구어머니 한복집 개조 ‘죽도소년’ 창업
죽도시장의 ‘핫 플레이스’로 만들어내
10년 넘은 단골들과의 끈끈한 유대감
카페 성공 운영 밑거름 역할해 와
“철저한 사전 준비·획기적 아이디어에
열정 바칠 각오로 창업에 도전하라”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노력해야

30대 시절 김희준 씨는 학원 운영자였다. 포항 북구에서 시작한 학원은 경영 성과도 좋았다. 김씨가 대표인 2개 학원의 수강생이 400명 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매너리즘에 빠졌고, 그때부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학원을 할 때도 틈틈이 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고, 커피 공부도 틈틈이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포항 중앙상가 골목의 폐가를 수리해 만든 ‘카페 1944’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경영학과 마케팅이 카페 운영 초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예술과 문화에 포커스를 맞춘 ‘스토리 마케팅 기법’이 카페가 쉽게 자리를 잡게 했다.

입구 시멘트 바닥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과 고양이 가면을 쓰고 커피와 주스를 가져다주는 카페의 주인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금세 입소문을 탔다.

지저분했던 주변 벽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김씨는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카페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성 가진 아이템이 필수다. 이전 카페가 고양이라는 키워드로 유명해졌다면, 옮겨온 이곳 죽도소년에선 화려한 색감의 두건을 쓰고, 멜빵 달린 옷을 입은 나 스스로를 가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인 것이다.”

마케팅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자영업자에게 더 중요한 건 성실함이다. 김씨는 자신이 일하는 주위 공간을 따스하고 정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고, 먼저 나서 빗자루를 들었다. 여기에 ‘골목길 미술전’과 ‘작은 콘서트’ 등 문화행사까지 열었다.

중앙상가에서 죽도시장으로 카페를 옮겨오면서도 이런 태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한복가게를 리모델링해 죽도소년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주위 사람들이 김씨의 부지런하고 정직한 성정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죽도시장 어르신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죽도소년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수십 년 이상 그곳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해온 어르신들이다.

청춘의 대부분을 가게에 바친 그들은 죽도시장을 제 몸처럼 여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일으키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젊은 김희준 씨가 나이 지긋한 상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가장 열심히 하는 건 인사다. 내 가게 앞만이 아니라 주변 청소도 하고 있다. 근처 상인들이 커피를 주문하면 반값에 배달까지 해준다. 3년가량 이렇게 지내다보니 친해진 분들이 적지 않다. 카페를 찾는 관광객을 어르신이 안내해 올 때도 있다.(웃음)”

사실 죽도소년 근처엔 ‘젊은 상인’이 별로 없다. 부모의 가게를 이어받아 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을 뿐이다.

김씨는 청년 자영업자가 전통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없는 이유를 오래된 시장 특유의 보수성과 폐쇄성이 아닌, 중장년층 위주로 구성된 상권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 생선·채소가게 등은 일의 특성상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가게로 나와야 하는 게 청년들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세련된 감각으로 꾸며진 죽도소년의 실내.
세련된 감각으로 꾸며진 죽도소년의 실내.

◇사람들이 찾아오는 카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재론의 여지없이 카페 운영은 장사다. 그렇기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은 기본 중 기본이다. 사업의 특성상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지 않으면 언제라도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는 게 카페 운영이다.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카페를 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아 오래 운영되는 카페는 드문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김희준 씨는 ‘예비 카페 창업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들려줬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면 금방 주위에 비슷한 유형의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는 걸 여러 번 봤다. 파이의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나눠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어떻겠는가? 철저한 사전 준비와 조사, 획기적인 아이디어, 여기에 열정을 바치겠다는 각오 없이 카페 문을 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창업 과정보다 더 어려운 건 카페의 지속적 운영이다. 죽도소년의 경우엔 ‘단골’이 카페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정을 주고받은 단골들은 김씨와 가족 이상의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20대 젊은 손님들에게 ‘키다리 아저씨’이자 인생의 선배 역할을 하고 있는 김희준 씨는 “우리 카페는 단골들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죽도소년에선 아기자기한 소품과 그림을 다수 만날 수 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단골이 선물하거나 그려준 것들이라고.

2년 전엔 김씨의 카페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단골손님들의 ‘스몰 웨딩’이 죽도소년에서 진행됐다.

전통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결혼식이 열린 건 아마 시장이 생기고 처음이었을 것이다. 손님에게서 카페 운영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게 죽도소년 주인의 마음가짐이라면, 자신들이 아끼는 공간에서 사람간의 정을 나누는 건 죽도소년 단골 모두의 기쁨이 되고 있다.

 

◇활력과 웃음 넘치는 전통시장을 위해

짧지 않은 기간 지속된 불황에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전통시장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지는 요즘이다. 죽도시장도 다를 수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은 제대로 체감되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의 하소연.

김희준 씨를 포함한 젊은 자영업자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밤 시간대 전통시장의 매력을 관광객에게 소개하는 ‘죽도시장 야간 투어 프로그램’과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시작해 포항운하와 죽도시장을 걸으며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걷기 코스의 개발’ 등은 김씨가 고민해온 전통시장 살리기 방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이 아이디어의 현실화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어떠한 곤경 속에서도 ‘희망의 출구’를 찾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어르신과 청년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활로를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죽도시장. 그 미래가 환하게 밝은 봄의 꽃길 같기를 기대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카페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성 가진 아이템이 필수다. 이전 카페가 고양이라는 키워드로 유명해졌다면, 옮겨온 이곳 죽도소년에선 화려한 색감의 두건을 쓰고, 멜빵 달린 옷을 입은 나 스스로를 가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인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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