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번방’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디지털 성 착취사건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500만 청와대 청원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발본색원을 지시했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검거됐고, 사법기관과 정치권이 들썩거리고 있다. 매사 그렇듯이 이 문제 역시 ‘엄벌’ 주장 따위로 대증 처방에만 신경 쓰고 있는 형국이어서 문제다. ‘수요’의 고리를 끊어내는 효과적인 근절대책을 세우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의 성 착취 대화방을 수사해온 경찰은 지금까지 12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8명을 구속했다. 경북경찰청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위반 혐의로 97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은 성 착취 정도가 가장 악랄했다.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해 나체 사진을 받아낸 뒤 이를 빌미 삼아 또 다른 성 착취물을 찍게 했다. 미성년자 10여명을 포함해 관련 피해자가 7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암호화폐 결제를 통해서만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범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변태 성욕의 한 가지인 관음증(觀淫症)이라는 강력한 수요의 동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단체 추계에 따르면 n번방 등을 통해 영상을 내려받은 일종의 집단 성폭력 이용자가 2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수요가 n번방 같은 독버섯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도 범죄확산을 허용한 측면이 있긴 하다.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들은 긴요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수요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몇십만 명에 이른다는 이번 사건 이용자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인권’에 대한 투철한 인식무장부터 서둘러야 한다. 미성년자들까지 마구잡이로 성 학대의 희생물을 만드는 범죄의 흉악성에 대한 경각심을 효과적으로 유도해내야 한다. 징벌수위를 높이는 조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요’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야 비로소 공급이 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