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화계도 바꾸나
극장 개봉 힘들자 ‘OTT’ 선택
한국 영화 신작 중 첫 사례 주목
급박한 상황 변화에 계약 엉켜
해외 세일즈 대행사 “법적 대응”

영화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가운데) 감독과 출연진이 2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민, 안재홍, 윤 감독, 이제훈, 박해수. /AP=연합뉴스
영화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가운데) 감독과 출연진이 2월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민, 안재홍, 윤 감독, 이제훈, 박해수. /AP=연합뉴스

윤성현 감독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개봉 없이 넷플릭스 독점 공개를 선택하면서 영화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영화를 제외하고,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 신작이 넷플릭스로 직행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개봉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향후 비슷한 사례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극장 중심의 관람 및 제작 행태에도 변화가 오는 등 영화계 전반에도 ‘뉴노멀’(새로운 정상)이 자리 잡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냥의 시간’은 이미 해외 30여 개국에 판매됐지만, 넷플릭스 독점 공개 계약에 따라 해외 판매도 철회해야 한다. 이에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국내 업체 콘텐츠 판다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혀 공방이 예상된다.

 

영화 ‘사냥의 시간’. /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사냥의 시간’. /리틀빅픽처스 제공

◇ “개봉 미룰수록 손해…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달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 29개 언어 자막으로 공개되는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은 이제훈·안재홍·최우식·박정민 등 충무로를 이끄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지난 2월 20일 개막한 올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도 초청됐다.

배급사 리틀빅픽처스 측은 베를린영화제 화제 몰이에 이어 곧바로 2월 26일 국내개봉할 계획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악재를 만나 발목이 잡혔다. 결국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연기를 결정했다.

이 영화 순제작비는 90억원, 홍보 마케팅 비용은 27억원으로, 총 117억 원이 투입됐다. 홍보 마케팅 비용은 이미 다 소진했다.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2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후반 작업이 미뤄지면서 개봉이 이미 밀린 상태였다”면서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과 외부 투자사들을 고려할 때 언제까지 미룰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극장 개봉을 하면 홍보 마케팅 비용을 다시 투입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넷플릭스와 계약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제작비를 어느 정도 보전할 정도는 된다”면서 “그래서 외부 투자사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집콕족’이 늘면서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수요가 폭발한 반면, 극장 개봉일을 잡기 어렵다는 점에서 최선의 차선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코로나 여파로 3월과 4월에 개봉을 미룬 영화만 어림잡아 50편이 넘는다. 이들 작품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OTT에 공개 의사를 타진할 가능성이 있다.

◇ 해외 세일즈 대행사 “이중 계약… 법적 대응하겠다”

그러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사냥의 시간’의 경우 넷플릭스와 계약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이미 해외 30여개국에 판권이 팔렸기 때문이다.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배급사 뉴(NEW) 자회사 콘텐츠판다 측은 “리틀빅픽처스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추진하면서 일방적으로 해외 세일즈 대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판권을 산 해외 배급사들과 계약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넷플릭스와 계약한 것은 이중계약”이라며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다, 신의를 깨뜨려 향후 해외 세일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리틀빅픽처스 측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팬데믹’ 이후로 영화가 언제 개봉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회사 운명이 걸린 만큼 우리 쪽 입장을 설명하고 해외 판매 계약 취소에 따른 비용은 모두 부담하겠다고 밝혔지만, 콘텐츠 판다 측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판권을 산 해외 배급사에는 일일이 메일을 보내 현 상황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재지변과 같은 현 상황에서 중소회사가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왜 뉴와 같은 메이저 회사가 협조를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며 “법정에서 시비를 가려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이다. /AP=연합뉴스

◇ 극장들, 신작 없어 발 동동

극장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신작이 없어 재개봉작으로 연명하는 상황이다. 볼만한 영화가 없다 보니 관객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 주말 이틀(21∼22일) 동안 전체 관객은 13만4천925명이었다. 토요일인 21일은 7만명대, 일요일인 22일은 6만명대에 불과했다.

극장 관계자는 “배급사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영화 생태계적 측면에서 이러한 결정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지 우려된다. 중급 영화들이 분명히 경쟁력이 있음에도 스크린을 포기하는 사례가 계속 나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극장들은 그동안 넷플릭스와 힘겨루기를 해왔다. 넷플릭스 영화를 개봉할 경우 2~3주 유예 기간(홀드 백)을 거쳐 넷플릭스에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홀드 백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상영을 거부했다.

◇ “한국 영화, 올해가 오히려 기회”

반면, 올해가 한국 영화에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게 잡혀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전제하에서다.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 넷플릭스, 아마존 등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영화 제작을 일제히 중단하면서 블록버스터부터 독립영화까지 줄줄이 올스톱됐다.

영화계 관계자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남미 시장 등이 모두 안정돼야 공개할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는 개봉을 거의 못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국 영화는 대부분 내수 시장에 의존한다. 국내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고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면 한국 영화는 경쟁작이 없어 독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