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한 ‘야당 복(福)’이 있는데, 보통 복이 아니라 천복(天福)이다.”

지금은 민생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이 지난해 11월 초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박찬주 전 대장 영입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가 보여준 태도와 관련해서는 “양손에 떡을 들고 한쪽만 먹어야 하는데 두 개 다 먹으려고 하니까 두 개 다 놓치는 꼴”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최근 미래통합당의 TK(대구·경북) 공천 후폭풍 소용돌이를 지켜보노라면 새삼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 복(福)’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아무리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독자적으로 한 것처럼 해도, 공당의 공천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당 대표의 몫이다. 황교안 대표는 왜 이런 이상한 TK 공천을 추구하거나 방관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섣불리 대권을 염두에 두고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천 결과를 뜯어보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친황(親黃·친황교안)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약진했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통합당이 TK 지역에서 또다시 ‘공천학살’이니, ‘막장 공천’이니 하는 뒷말을 폭발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당의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도 없고, 절차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낙하산 공천 장난질까지 시도된 것으로 읽힌다. 무엇보다도 한심한 패착은 TK 유권자들의 자존심을 전혀 고려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비난’과 ‘통합 웅변’만으로 되는 선거판이 아니다. 국민의 관심은 욕설 능력도, 닥치고 통합의 만용도 아니다. 첫 번째가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미래로 나아갈 혁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고, 다음은 도덕성과 실력, 경륜을 갖춘 인재들을 고루 품는 대안 정당으로서의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헐뜯는 일 말고 황교안 대표가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흐드러졌다. 미래통합당의 21대 총선공천이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공천 배제(컷오프)된 현역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잇달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TK 선거판세가 오리무중으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전 지역구에서 후보를 냈다. 3분할 구도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이번 총선은 당연히 집권당에 대한 심판이어야 맞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여당은 자신만만하게 청와대 출신들을 일선에 전진 배치하고, 그토록 꺼리던 비례 정당도 염치 접어놓고 착착 진행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집권당 후보의 선전(善戰) 현장이 수두룩하다.

공천에서 감동을 주기는커녕 내분 양상까지 보이는 제1야당의 자충수가 총선 판세에 변수로 떠오를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초 영국의 총선이 그랬듯이 현대인들은 집권당에 대해 맹비판을 퍼부으면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 야당은 또 절대로 안 찍는 실리적 표심이 강하다. ‘하늘이 내린 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야당 복(福)’은 또다시 작동할 것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