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인연 맺은 소설가 백가흠

인간과 세계의 어두운 면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희망 찾기’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 백가흠.
인간과 세계의 어두운 면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희망 찾기’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 백가흠.

예술가가 세상에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희망과 꿈을 설파함으로써 고통과 좌절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을 위로하고 고무하는 것.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들’이 그랬다. 그렇다면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뭘까? 있는 그대로의 세상, 즉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며 때로는 처참하기까지 한 현실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 그 방식을 통해 인간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위의 전제를 놓고 보자면 소설가 백가흠(46)은 후자에 포함되는 사람이 분명하다.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를 시작으로 ‘힌트는 도련님’ ‘사십사(四十四)’ ‘나프탈렌’ ‘향’ 등의 작품을 써온 백가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습한 터널 같은 세상사와 인간사를 서술 혹은, 묘사해왔다. 축소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담담한 문장으로.

“현대인의 극단적 정신세계와 병적 불화를 아이러니와 판타지로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3년 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대구에 왔다. 고향도 아니고, 오래 생활한 서울도 아닌 ‘아직은 낯선 도시’에서 삶과 문학의 뿌리를 새롭게 내리고 있는 것.

향후 백가흠의 소설이 걸어갈 길과 대구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다.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무차별적인 공습을 받은 대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탓에 인터뷰는 몇 차례의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대면 인터뷰는 ‘코로나19’가 물러가는 날 술잔을 앞에 놓고 하자는 약속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그려온 등단 20년차
3년전부터 지역 문학도 양성에 힘써 와
대구·경북 배경 담긴 소설집 출간 ‘눈앞’
“학생의 말과 글을 학생 입장서 들어주는
친절한 선생이 되는 것이 나만의 강의법”

-2001년 데뷔했으니 올해로 등단 20년차다.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소설에 관심이 있던 때와 쓰기 시작한 때는 달랐다.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물론 공부하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집에 책이 꽤 많았는데, 사춘기 시절 야한 호기심이 발동해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밤에는 소설가 오정희도 걸리고, 황석영도 읽게 되는 밤이 생겨났다. ‘이게 뭐지?’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스스로 재밌고 즐겁게 읽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것을 막연히 깨달았다. 어찌어찌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는데, 뭘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학 다닐 때는 주로 시를 썼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고, 복학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데뷔했다. 그래서 습작기는 데뷔하고부터라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여느 젊은 작가들처럼 힘들었다. 글을 쓰는 것은 재밌고 지치지 않았는데, 너무 가난했다. 그걸 견디는 것과 자존심 때문에 좀 많이 힘들었다.

-좋아했거나 영향 받았던 작가는 누구인가.

△몇 년에 한 번은 꼭 다시 읽는 작가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의 작품도 즐겨 읽었다. 그들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 이전에 느꼈던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고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게 매력이지 싶다. 한국에선 1970년대 작가들을 거론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윤흥길의 초기 소설이 압권이다.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대구로 온 시기는 언제인지. 또 오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

△햇수로 3년째가 지나고 있다. 특별한 동기는 없고 대구가 그냥 좋았다. 심리적으로 워낙 멀게 느껴져 외국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재직 중인 계명대 문예창작과와 경험한 대구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말하면 감동적이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뜻하며 예의바르고 얌전하다’라는 게 내가 받은 첫인상이고 그 감정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타인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얌전한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처음 본다. 수업 시간에도 서로에게 말이 조심스럽고 예의바르다. 그게 단점으로 읽힐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멀리 보면 글을 쓰는 데 있어 큰 미덕이라고 믿는다.

-학생들을 위한 당신만의 특별한 강의법이 있다면.

△나는 친절한 선생이 되고 싶다. 좋은 문학 선생은 학생의 말과 글을 학생들 입장에서 들어주는 것이라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나는 내 글을 쓰고, 학생들은 각자의 글을 쓴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좋다고 생각하는 글의 방향을 학생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결국 문학은 스스로 개척하는 자기만의 영토 아니겠는가.

-친하게 교류하는 대구·경북의 작가는 누구인가.

△아직까지 교류가 활발하진 않다. 다행스럽게도 데뷔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문학평론가 손정수와 김영찬이 학교에 함께 재직하고 있다. 그들과는 생활을 같이 하고 있는 기분이다. 대구·경북 작가 중에서는 장옥관(시인)이 가장 친하다. 송재학(시인)의 작업실에 놀러가서 음악을 들은 적도 있다.

-문학의 길을 함께 걸어갈 계명대 학생 중 기억에 남는 이들은.

△작년에 ‘소설 비평가’ 두 명이 나왔다. 세계일보와 창비(문예지)로 대학원 학생들이 데뷔를 했다. 젊은 시절 내가 다녔던 학교에선 30년간 등단한 친구들이 100명에 이르지만 비평가는 두 명 뿐이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계명대학교 학생들의 문학적 수준이 굉장히 높다. 물론 이들 외에도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꽤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듯하다. 어쨌든 비평가가 나왔으니 시간이 지나면 소설가와 시인도 나올 것이다. 경험상 소설이 먼저고 시는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소설을 쓰는 시간 외엔 뭘 하는지.

△나는 일정한 패턴을 좋아하는 편이다. 월요일 저녁에는 테니스를 치고, 일주일에 세 번은 체육관에 간다. 주로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술을 마신다. 음악은 작정하고 일주일에 서너 시간 듣고,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은 항상 틀어놓는다. 취미라고 하면 글쎄, 살림이 아닐까?(웃음)? 혼자 산 지 오래 돼 음식 만들고 청소하는 것을 좋아한다.

-출간한 책이 여러 권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한 권을 선택한다면.

△책에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픈 손가락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들게 썼는데 문단과 독자의 평가나 판매가 가장 더딘 작품이 애착이 간다. 장편 ‘향’(문학과지성사)이 그렇다. 7년을 준비했던 소설이다. 그 책을 읽으면 소설에 대한 내 젊은 날의 패기와 부리부리 했던 감성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대구·경북을 소재나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있는가.

△공간은 소설에서 상징(알레고리)이다. 그래서 대구가 주인공인 소설은 없다. 물론 잘 몰랐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쓴 것은 두어 편 있다. 내 고향은 전북 익산인데, 이제 대구로 근원을 옮겨오는 중이다.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게 ‘문학적 말년’이 할애된다면 그 주인공은 이곳이 될 게 분명하다.

-지금 대구는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슬기롭게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진행되지 않아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 조심스럽게 일상을 찾는 연습을 하고 있다. 텅 비었던 거리에도 조금씩 사람이 늘어간다. 모두가 힘든 시기니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또 과감하게 일상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나.

-우문이다. 현답을 부탁한다. 소설은 뭐고, 소설가는 뭔가.

△소설은 뒤통수다. 소설가는 앞서 걷는 사람의 뒤통수를 보며 따라 걷는 사람이다.
 

-올해 출간과 집필 계획은.

△곧 5년 6개월 만에 소설집이 출간된다. 첫 책을 낸 출판사에서다. 수록된 소설의 절반 정도는 대구에서 썼다. 대구와 경북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두 편 있다. 3월부터는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로 장편소설 연재도 시작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더불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반드시 어떻게 돼야겠다는 목적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성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인상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문학은 함께 걷는 여정을 나누는 일이다.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이 그려내는 한국 문학의 수준과 위상은 세계적이라 자부한다. 바람이 있다면 한국 소설을 많이 사랑해주고, 책도 좀 사줬으면 좋겠다.

문학은 함께 걷는 여정을 나누는 일이다.
소설은 뒤통수고, 소설가는 앞서 걷는 사람의 뒤통수를 보며 따라 걷는 사람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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