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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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사회에 공포가 만연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균과 바이러스의 영역을 발견해 낸 것이 위생의 영역에 있어서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진보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존재하되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공포를 만들어낸다.

우리 마음속에 불길과 같이 일어나는 공포는 비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가시화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맺고 있던 인간적인 관계들과 매일 생활하는 공간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을,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 공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자신이 영위하는 시공간의 형태를 바꾼다.

세계 속에는 인간이 공포를 느낄 만한 대상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지만, 비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만큼 본질적인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나 전쟁처럼 명확하게 타자화될 수 있는 공포의 대상과 달리,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언제나 붙잡고 기대 있던 손잡이의 명확한 감각도, 내가 의지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도, 늘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집이 주는 안온함도,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그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현상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바깥 세계와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문학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곤 했다. ‘페스트’를 통해 인간 사회에 흘러 넘쳐 있는 비인간성이라는 징후를 파악했던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1947)’가 그렇고, 콜레라를 사랑의 열병에 비유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고통 받는 것에 대해 긴 호흡으로 담아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 그러하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de Sousa Saramago·1922~2010)의 ‘눈먼자들의 도시(1995)’는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시각의존성과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직조되는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의사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이 멀게 되고, 그는 이것이 원인을 알 수 없이 전염되는 백색 질병임을 당국에 알리고, 역시 전염되는 상황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눈이 멀지 않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격리된다.

눈이 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격리되면서 그들에게는 전문가의 권위나 윤리, 이성적 판단 같은 인간이 인간됨을 규정해왔던 여러 가지 기준들이 사라지고, 일용품과 식품에 대한 약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약탈이 시작된다. 이 ‘눈먼자들의 도시’속 인간들은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표현할 줄 모르는 채 공포에 자신을 내맡긴 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역사에 대한 우화이다. 눈이 보이는 자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은 길바닥을 기어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한 먹을 것에 매달린다.

이 소설에서 함께 하고 있는 무리들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비인간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던 의사의 아내는 아이와 어른을 씻기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며,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 노력이 단지 숭고하다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는 맹목적 폭력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그것에 대처하면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공포는 종종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가진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바꾸지 않을 힘을 갖고 있다. 모든 것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