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종사 대웅전 뜰에서 내려다 본 천척루와 풍경. 석종사는 충북 충주시 직동길 271-56에 위치해 있다.

충주 금봉산(金鳳山) 자락에 석종사라는 절이 있다. 그리 멀지 않지만 내게는 낯설고 생경스러운 도시를 혜국 스님의 말씀 하나 잡고 찾아 나선다. 휴일이 무색할 정도로 고속도로는 한산한데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석종사에는 뜻밖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일주문을 지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문패처럼 내건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죽장사라는 절이 있던 폐사지를 봉암사에서 수행하던 혜국 스님이 현몽을 꾼 뒤 찾아와 석종사를 세웠다. 스님은 갈 곳 없는 연로한 스님들과,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대웅전 창건을 시작으로 혜국 스님의 상좌들이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고, 신도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대대적인 불사를 이루었으니 불심의 깊이가 제대로 살아 있는 절이다.

크고 작은 당우들이 널찍하게 거리를 둔 경내는 인적 없이 고요하다. 천척루를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늙은 어머니와 딸인 듯한 모녀가 봄꽃 같은 미소를 피우며 반긴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두려움 없는 민낯의 온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려 때 만들어진 오층석탑은 멀찍이 서서 홀로 참선 중이다. 결코 쓸쓸하지 않은, 환한 평화가 넘실거리는 경내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석종사는 웅장한 외형만큼 내재된 힘을 자랑한다. 군장병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在家者)도 사찰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찰은 그리 흔하지 않다. 진지하게 명상에 잠긴 불자들의 모습은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내게 고무적일만큼 서늘하게 다가왔다. 육신의 눈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

누하진입식 천척루를 지나 마당보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감로수에 손을 씻는다. 대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 눈부신 햇살, 잘 생긴 나무들,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참선 중이다. 지독히도 그립고 그립던 봄이 오는 풍경이다. 신선한 설렘과 전율들을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마스크를 벗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나와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햇살의 만남이 어색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계단을 오른다.

대웅전 팔작지붕은 툭 트인 산야를 향해 날아오를 듯 힘차고 웅장한데 너른 뜰 위로 수많은 좌복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색적인 사찰의 봄맞이 풍경이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게도 명당 터라는 게 느껴진다. 가부좌가 아닌 편한 자세로 대웅전 뜰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

가지런히 전지를 한 나무들처럼 탐욕과 집착으로 멍든 마음 깨끗이 잘려나가고 고착된 습은 봄볕에 녹아 재가 될 것 같다. 고만고만한 종류의 반성과 다짐이 되풀이 될 때마다 겪어야 했던 자괴감들, 행동은 마음을 따르지 못해 자주 괴로워했다.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천하의 법도로 삼을 만큼 한결 같은 ‘하나’, 그것이 부재인 채로 나는 육신이 끄는 대로 살아왔다.

게으름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들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새해 첫날의 다짐처럼 오래지 않아 기도는 무질서 속으로 함몰되었으며, 감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찰과 말씀들이 든든한 위안처가 되어 주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대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법당에 끌리듯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하듯 청소를 하고 열린 어간문 앞을 서성대던 햇살이 나를 안내하고 처마 끝의 풍경도 울지 않았다. 삼배의 예를 갖추자 한결 마음이 정갈해진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큰 절은 무언가로 꽉 차 흐른다. 삼라만상 실개성불(森羅萬象 悉皆成佛).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부처를 이루었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이 어수선한 봄날, 둘러보니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실눈을 뜨는 나무와 바위, 높다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시선 닿는 곳마다 생명이 숨 쉰다.

대웅전 뜰 위에 서서 내 안을 응시한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맬 때마다 어김없이 손 내미는 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번에는 혜국 스님의 말씀이 봄꽃처럼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모든 건 필연이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 한 줌의 햇살,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전율들, 인생은 결코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혜국 스님의 말씀을 따라 햇살 속을 걷는다. 한 번의 참기도는 수만 번의 헛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나는 언제나 조급했다.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간과했었다.

서둘러 피었다가 이내 이울더라도 다시 그렁그렁 눈물 같은 꽃눈을 달고 헛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언젠가 이승을 떠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지지 않도록, 더 이상은 두렵거나 쓸쓸하지 않을 미지의 세계를 위해….

삶은 수많은 출발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