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직업 상 읽기 쓰기 경험을 많이 하는데, 학생들과 텍스트를 같이 읽거나 그들이 쓴 감상문을 보다 보면, 학생들에게 관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련을 꿈꾸었다’는 수필을 같이 읽을 때다. 작가 김선우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소년이 구걸하지 않고 꽃을 파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이다. 가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면서 그 소년을 더러운 물에서 피는 수련에 비유하는 내용이다.

이 글을 보고 어떤 학생은 작가의 감동에 감정 이입하여 캄보디아 소년의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수련이 과연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피는지 사실을 확인하려 든다. 어떤 학생은 구걸을 금지한 캄보디아 정책 때문에 소년이 꽃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들며 감동을 거부한다. 어떤 학생은 사실과는 별개로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한다. 이렇게 같은 자료를 보아도 반응이 다른데, 그것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은 오랜 가뭄으로 주인집에서 쫓겨난 하인이 라쇼몽에서 노파를 만난 후 도둑으로 변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내용이다. 이 단편을 읽고 어떤 학생은 가난을 구제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상문을 쓰고, 어떤 학생은 하인의 부도덕함을 심판하는 글을 쓴다. 이것 역시 작품을 보는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그런 관점은 평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련이 얼마나 더러운 물에서 피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은 사물을 볼 때 사실을 중시하는 평소 관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캄보디아의 구걸 금지 정책은 경험하지 않으면 관심 갖기 힘든 정보이니, 작품을 볼 때 자신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이 눈에 띄는 것은 그 부분을 일부러 골랐다기보다는 자신의 관심과 경험에 의해서 그것들이 보인 것이다.

관점은 자기가 속한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상위 10%에 속하는지 아닌지, 부모가 엄격한지 개방적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심지어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관점의 경우 타고난 뇌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관점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렇다고 관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점을 바꿀거야 해서 바꿀 수는 없지만, 절박한 상황이 되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으면 종교를 갖게 되거나 개종을 하기도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도 진보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 역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같이 읽기와 글쓰기가 적절한 도구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관점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