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권에선 ‘전략공천’이라는 용어가 통용된다. 대략, 각종 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임시조직과 당시의 중앙당 실력자들이 공천자를 은밀히 낙점하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금품수수가 매개되거나 철두철미하게 패거리 역학이 작동해왔다. 때로는 영입하여 꽂아 내린 인물 됨됨이가 선거 판세를 좌우하기도 하니 긍정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이 ‘낙하산 공천’ 관행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욱이 다수 유권자의 거주지와 근무지가 다르기 십상인 도시지역도 아닌 지방정치권 공천을 중앙당 실력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은 합당하지도 않거니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폐습이다. 완전한 상향식 공천을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의 요건은 갖춘 후보군을 대상으로 가능한 경선을 치르게 하는 방식이 옳다는 것은 상식이다.

‘낙하산 공천’을 허여하는 민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할까. 또 정계 실력자들은 이 몰상식한 정치 프로세스를 어떻게 악용해왔을까.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서 대체로 불만이 많다. 선거 때 별·달을 따오래도 해낼 듯이 뻥 치는 일을 서슴지 않던 선출직 고관대작들이 막상 배지를 달고 나면 권세 누리기에만 열중할 뿐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번 소위 ‘물갈이’에 대한 소망이 일정 정도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 현상이 패거리 정치꾼들의 먹잇감이 된다. 명망가들은 공천권에 영향을 행사할 기회가 왔을 때 물갈이 여론을 올라탄 사천(私薦) 피바람을 어김없이 일으키곤 한다. 그 무도한 폐단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과 방관의 틈을 비집고 독버섯처럼 온존해 왔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의 공천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폭발하는 ‘정권 심판’ 여론에 몸이 단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을 뒤집고, 골수당원들을 앞세워 명분이라곤 좁쌀만큼도 없는 ‘비례 위성 정당’ 참여를 선언했다. 공천도 대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실어 낙하산 섞어가며 마무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의 공천은 구태가 다시 재연됐다는 혹평을 모면키 어렵다. 이런저런 잡음이 줄기차게 일고 있다는 현상만으로도 문제가 다분히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전남 공천은 18개 선거구 중 17곳을 경선지역으로 선정해 경선율이 94.4%에 이른다. 차도살육(借刀殺戮)이 벌어진 미래통합당의 대구·경북 공천은 25개 선거구 중 12곳이 단수 또는 우선 추천이고 고작 13곳이 경선지역으로 결정돼 경선율은 52%에 불과하다.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하기보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출마 희망자들을 장기판 졸(卒) 다루듯 함부로 다루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치개혁’이란 곧 ‘공천개혁’이다.

‘공천개혁’은 ‘공천 민주화’와 다른 말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깊숙이 작동하는 이런 공천은 생각 깊은 유권자들을 번번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 나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안재휘논설위원 ajh-77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