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내 지인 중에 L이란 위인이 있다. L은 모 대학 정교수인데, 행동이 차분하고 말솜씨는 조곤조곤하며 성격도 유한 편이라 사람들마다 그 인품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주위로부터 이 시대의 ‘선비’, ‘양반’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터였다. 그런데 유독, 이 L을 가까이서 한 10년 이상 알아 온 Y만큼은, 사람들이 칭찬할 때마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나중에 L이 교육자로서 해선 안 되는 불미한 사건으로 경질되어,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했을 때, Y만큼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혀를 차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쯧쯧. 비슷한 건 가짜인데 그것을 다들 모르고.’

옛말에,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있다. 겉으론 양 머리를 걸고서 뒤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로,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빗댄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이 본인은 여인들의 남장을 좋아하여 궁중에서 몰래 행하면서 온 나라에는 금지시키자, 당대 유명한 사상가 안자(晏子)가, “이는 곧 문에는 소머리를 걸고서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라 한 데서 비슷한 의미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하게 된 고사이다.

사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많은 성현들이 극도로 경계했던 바이다. 겉, 속이 다른 선비를 특히 향원이라 했는데, 이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사이비(似而非) 선비를 일컫는다. 공자는 ‘논어’에 “자색이 적색을 망침을 미워한다”라고 한 바 있고, 맹자 또한 충직하고 신실한 듯(似忠信), 염치 있고 고결한 듯(似廉潔)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이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그러면서, 사이비들은 마치 논두렁에 있는 ‘피’와 같다고 했다. 피는 벼와 흡사하게 생겨 뒤엉켜 자라며 벼의 성장을 방해하기에, 노련한 농부가 아니면 다 자라 열매 맺을 때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러한 향원을 극도로 싫어한 인물로는 또 연암 박지원이 있다. 그는 스무 가지의 환희(요술)를 구경하고 글 하나를 남겼는데(‘환희기’), 핵심은 눈에 보이는 요술로 눈속임하는 것보다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술 곧 겉으로는 덕 있는 체 하면서, 온갖 교묘한 말로 위로는 임금을 아래로는 백성들을 눈속임하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눈속임’이야 알아서 피하면 될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속임’은 간파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진실이 중요한 이 마당에, 겉으로는 진실한 척,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척, 뒤로는 ‘감춤’,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종교인들이 많다. 또 다가온 선거철, 표심에 눈멀어 겉으로는 국민을 생각하는 ‘척’, 뒤로는 또 다른 꿍꿍이를 꿈꾸는 정치인들도 많다. 다들 이 시대의 향원들이자, 사회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눈 감아야 코 베가던 세상이, 이제 눈을 빤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 되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실상 코로나바이러스보다도 향원 바이러스가 더 무섭게 된 이 세상에, 다들 벼와 섞여 있는 피를 잘 솎아내는 노련한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