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

설마설마 하던 일들이 우려의 현실로 돼버렸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전역에 후폭풍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감염원 원천 차단을 위한 철저한 통제와 제재로 초동 대처가 유효한 듯 싶었다. 그러나 첫 감염자가 나오고 불과 한 달도 채 안돼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속출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작금의 비상사태를 전혀 예기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봉착하여 온 나라가 오리무중에 휩싸인 듯 하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불안과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가고 있다. 외출과 이동 자제 등 감염을 피하기 위해 거의 두문불출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위축되고 경색돼 가고 있다. 대화와 대문이 닫히고 만남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이 눈에 띄게 끊어졌는가 하면, 식당이나 시장, 소상공인, 중소기업체 등에게는 생계와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상이 격리되고 사회, 경제적인 엄청난 타격 속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공포가 온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다가 이런 변고가 생겼을까? 당국과 정부에서는 사태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야기되고 악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응당 다했을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초기의 다각적인 유입 차단과 과도할 정도의 대응, 보다 면밀하고 확고한 선제적 대처가 아쉽게 여겨짐은 비단 필자만의 소견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는 노자 도덕경의 글귀가 생각난다. 중요한 문제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쉬운 일들을 어렵게 풀려니 자꾸 엇박자가 나고 뒷북만 치는 양상이다. 행정 수반의 혜안, 의료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조언과 긴요한 대안제시, 실무진의 총체적인 검토와 과학적인 대응체계 등을 좀 더 중차대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있는데 국민의 주치의는 없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고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최고의 의료진과 의술, 발 빠른 행정력과 지원체계, 그리고 국민들의 온정과 응원으로 절체절명의 난국을 잘 헤쳐가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으로 다져진 사회적 신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장기화 앞에서는 헌신과 열정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방역의 주체자가 되어, 배려와 이타심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다 함께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요즘,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도록 각자가 인내와 절제로 생활 속의 면역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희망을 나누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위로의 백신을 보내며, 우리 모두 웃음백신으로 활짝 웃는 봄맞이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