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염예방수칙과 확진자 동선 등 코로나19에 관련된 문자가 들어온다. 도서관 연장 휴관, 미술관의 잠정 휴관, 유치·초중고등학교의 개학연기, 행사 취소, 모임 연기….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이 일상의 문밖에서 꽃눈마냥 웅크리고 앉아 초조하게 새봄이 오길 기다리는 듯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유에서든 정신적인 원인으로든 꼼짝없이 갇히길 꿈꾸었던 것이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화장을 하거나 양말을 신었고 차 안에서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내달렸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땐 3일이 주어지면 대체 무얼 하고 싶었던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아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그 하릴없는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처음엔 정말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상을 일상 같지 않게 보냈다.

그러다 조금씩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이들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니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랬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챙기며 첫째의 식성이 지아빠와 참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밥 먹기 전에 둘째는 꼭 과일 한 쪽을 먼저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셋째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두 번 이상 씹지 않고 삼킨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그랬다. 일거리가 많은 날이면 집에 와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셋째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오른쪽 다리를 베고 가만히 눕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그토록 오래오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아챘다. 그리고 매번 아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니 수면시간도 비슷해져서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가만히 내 왼손을 끌어가 자기 배에 올려두었는데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내 손바닥 아래서 따뜻하게 오르내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 나는 참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려져 있던 것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듯 했다.

찬찬히 들여다보자 첫째의 설거지 솜씨가 나보다 더 나았고 4학년에 올라가는 둘째가 아직 두 자리수 나누기 한 자리수 셈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셋째는 나를 부를 때 엄마, 라고 하지 않고 “엄미”라고 부르고 있었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일상을 본래의 일상으로 비춰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문밖에 세워두기로 한다. 다만 초조하지 않게 다만 지치지 않게, 지금 있는 그대로 품기로 한다.

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안에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