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은 의학수준이나 구료 대책이 역병에 매우 무력했기에 주민 90% 이상이 살기 위해서는 타 지역으로 대피했다. 한양에서 역병이 돌면 한성부가 역병환자나 죽은 주검을 적발해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동서활인원에서 역병으로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후기로 오면서 이 활인원의 의관들은 태만했고 약을 횡령하기 바빴기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다가 결국 1882년에 사라졌다. 당시 극성을 부리던 역병으로는 두창(痘瘡),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으로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두창과 콜레라였다. 질병사(疾病史)에 따르면 18~19세기 전 세계에서 동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해 조선도 국제교역으로 인한 세계역병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인구밀집이나 잘 씻지 않고 날것을 즐겨먹는 문화, 관습적 측면에서도 그 원인이 있었다.

‘마마(<5ABD><5ABD>))’로 불리는 천연두(두창)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감염되면 대개 죽음에 이르렀고, 살아남는다 해도 얼굴에 흉터가 남아 곰보가 됐다. 전염성도 강해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멸망케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 역시 천연두를 하늘이 내린 불가항력의 재앙이라 여기다 종두법의 수입으로 이 병을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콜레라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의료선교사인 에비슨은 1895년에 창궐한 상황을 보고 ‘내가 살면서 본 일 중 가장 절망적이고 무서운 병으로 약도 죽음을 늦출 뿐이고 쓸모가 없다. 독은 단번에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모든 기관을 정지시켰다’고 적고 있다.

이로 인해 역병이 한 번 돌면 수많은 사람이 겪고 죽었기에 마을 언덕은 무덤으로 가득 찼다. 중세 유럽사회의 봉건제도를 몰락시킨 흑사병이나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창궐한 20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감염병인 스페인독감 역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6년의 영국의 미생물학자 피터 피옷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에볼라바이러스를 비롯해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병한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 등 이런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 코로나19가 또 다시 세계에 확산됐다. 이런 바이러스의 참상과 공포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에볼라의 출현은 세균의 대유행을 의미하는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를 탄생시켰고, 파멸로 가는 진실인 ‘리트릿’은 공기전염을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컨테이젼’은 전염병 확산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감기’는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영화로 중국을 발원지로 변종 조류독감이 밀입국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감염원에 의해 급속도로 퍼진다. 100% 치사율을 다룬 영화로 도시폐쇄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 고대 미 생명체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미래학자들의 의견에 그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런 장르의 영화 역시 인류에게 던지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그 심각성에 대한 메시지는 주목해야 할 시사성이 크다고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