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아간호사
정현아간호사

매주 ‘논어’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학이(學而)편 4장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뜻은 이렇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세 가지 측면에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며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 친구와 교제하며 미덥지 못한 점은 없는가?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히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

어느 날 퇴근 후, 증자의 세 가지 성찰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일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진심을 다해 일했을까?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대한 순간은 없었을까? 내 직무를 즐기는가?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을 바꾸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했는가?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마친 건 아닌지 돌아본다.

둘째, 친구와 교제하면서 미덥지 못한 점은 없었는가?

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변화가 생기면 삐그덕 거리기 마련이다. 서로 적응하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 모난 부분이 부대끼며 동글동글해지는 시간임을 알면서도 들려오는 불협화음이 신경 쓰인다. 억지로 되는 게 있겠나 싶어 시간을 두고 마음을 열어보자고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가 다시 큰 오해를 만들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살피고, 내가 먼저 행하면 통하리라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만난 소중한 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는가? 그들의 소중함을 느꼈는가?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내 기분을 내세워 상대를 이용하진 않았는가? 일방적인 강요로 불편하게 하진 않았는가? 거짓으로 가면을 쓴 채 대하진 않았는가?

셋째,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숙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이 부분은 나 자신의 배움에 적용해 본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만난 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 새로운 지식을 하나라도 배우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은 사람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백과사전이라도 들추어 한 가지를 배우고 잠들었다는 대목이 놀라웠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갇혀 뱅뱅 맴돌지 않고 늘 배우려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일상의 모든 부분이 내 스승이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보다 못한 것은 없다.

나는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하나를 더해 본다.

넷째,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는가? 현대인은 고독한 시간이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할까? 정보의 늪에 빠져 눈이 먼 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에 나를 맡기는 행동을 반복하면 결과는 어떨까?

남들이 올리는 화려한 사진에 대리 만족하고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또다시 거짓 가면을 쓰고 멋지게 한 컷 올리는 삶이 진정한 삶일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그 시간 자체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외부 자극 없이 고요한 상태가 필요하다.

나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하루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상태를 살피고 내면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을 매일 갖는다. 고독한 시간이다. 조금 익숙해지면 짙은 고독이 찾아와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시작한다. 모든 창조적인 일은 고독이 필요하다. 매일 성찰하는 삶은 ‘선택과 실행’을 돌아보게 한다. 삶에 다가온 변화들, 소중한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성찰을 통해 몰입과 집중할 대상을 정한다. 해야 할 것은 시작하고 계속해야 할 것을 지속해 나간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중단한다.

삶을 진하게 살아내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매일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이다. 오늘도 증자는 묻는다.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