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우르크의 지배자 길가메시는 폭정을 일삼다가 신들이 보낸 엔키두의 공격을 받는다. 일주일 넘게 싸우던 두 용사는 싸움의 허망함을 깨닫고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삼나무숲의 수호자 훔바바와 싸우라는 신들의 명령에 따라 훔바바를 퇴치하고, 여신 이슈타르의 구애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 대가(代價)로 엔키두를 잃어버린 길가메시는 영생불사를 염원한다. 우트나피슈팀에게 불로초를 얻지만, 뱀에게 도둑맞고 인생무상을 수용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기둥 줄거리다. 현대의학은 요즘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작동하고 있다. 인간수명 500세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최장수명은 120세 전후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4배로 확대하는 기획이 진행되는 것이다. 어째서 인간은 장구한 세월을 살고자 욕망하는가. 무엇이 그들에게 영생불사를 꿈꾸게 하는가.

며칠 전 어머니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 졸였다. 연세를 생각하면 정신이나 육신이 건강한 편이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악화하는 것을 보노라니 속이 찡해온다. 언제부턴지 온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가 삶의 의욕도 입맛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평소의 생동감과 호기심 그리고 잔소리마저 실종되어 다른 사람처럼 돼버린 모친을 보는 것은 아픔이었다.

막내는 노인성 우울증 같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모친이 총무로 있는 경로당이 장기간 폐원한 상태여서 말동무도 없고, 마실도 나가시지 않았다는 게다.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다가 삼시 세끼 쓰디쓴 입맛으로 최저수준의 섭생으로 일관한 지 어언 1개월. 그로 인해 육신과 정신건강이 저하된 상태에서 공간 지각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대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1인 가구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50∼60대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711만에 달하는 중장년 세대를 가리켜 베이비붐 세대라 한다. 전체인구 가운데 14.3%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나라의 중추를 이루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자녀양육과 부모봉양의 무거운 등짐을 진 마지막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모친의 노화와 약화에 속수무책으로 두 손만 비비고 있는 형국이니 속이 쓰리다. 그나마 며칠 지난 후 점차 기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도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벼운 실내운동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동네 한 바퀴 도는 여유로운 산책을 권고한다. 형제들에게 잦은 방문과 대화, 유쾌한 소일거리를 함께 찾아보자는 식으로 모친의 안쓰럽고 아슬아슬한 늙어감과 마주한다. 길가메시도 붓다도 진시황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탄생과 죽음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필멸의 존재로 우리는 생로병사의 수인(囚人)이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필연을 새삼 되새기는 시간이 코로나19와 함께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