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국토가 좁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도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나라 땅덩어리 좁은 탓을 하게 된다. 아파트, 백화점, 빌딩, 상가할 것 없이 주차 공간부족으로 웬만해서는 한 번에 주차를 하지 못한다. 다들 바쁜 일상 탓인지 주차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절대 공간이 부족하니 차량 1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필요최소한으로 구획되어 있다. 주차장의 옆 차량과 주차간격이 차문을 열고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협소하다. 짐이라도 가지고 내릴 땐 고도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옆 차량이 운전석 쪽 경계선에 치우쳐 주차되어 있을 경우엔 아예 운전석 출입문 하차를 포기해야한다. 사이드 브레이크 손잡이에 엉덩이가 찔리지 않도록 월담하여 조수석 출입문으로 내릴 때면 온 몸에 땀이 밸 지경이다. ‘체중을 줄여라’는 가족의 애정 어린 충고까지 감수해야한다.

옆 차량 운전자의 무사려(無思慮)에 대한 비난을 뱉어본들 갈 길이 바쁘기에 못이긴 척하고 넘어간다. 진짜 낭패는 양쪽 주차경계선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주차하고도 후발 주차 차량의 거리두기 실패의 경우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 차를 빼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네 탓이란 증거 찾기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원흉을 끌어내 한밤의 결투를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침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지 않는 이상 운전자의 양식 있는 주차습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후진으로 자로 재듯이 정중앙에 주차하여 옆 차량과 정확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30년 운전경력에도 후진 주차에 젬병인 나 같은 사람은 늘 전·후진을 몇 번하는 불편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주차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일종의 에티켓이다.

‘팔길이(arm-length)’라는 말이 있다. 영화관이나 운동경기장 관람석에서 팔을 함부로 벌려 옆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쓰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내야 된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과 적당한 거리두기는 생활의 지혜이며 때로는 규칙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람사이 거리두기가 관심거리다. 비말(침)로 전파된다는 속성으로 마스크로 예방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대화를 해야 한단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나 의료진들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증상이 있으면 자가에 머물도록 하고 회식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전파를 막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연인들도, 금슬 좋은 부부도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당분간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빨리 종식되기를 갈망한다. 위기 때마다 불굴의 의지와 지혜로 극복했던 한민족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