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는 일도 독서토론 모임도 모두 미뤄야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열심히 보듯 영화도 자세히 읽어버릇 하다보니 쟁여놓은 영화가 기록장에 가득하다. 그 중에 몇 편을 오늘 읽어주려한다.

 

삶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런치박스’/리테쉬바트라 감독

‘런치박스’는 여러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인도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특이한 시스템 덕분에 영화가 진행된다. 인구가 거의 천만가까이 되는 뭄바이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람이 5천명 넘는다고 한다. 다바왈라, 도시락을 뜻하는 ‘다바’와 나르는 사람이란 뜻의 ‘왈라’는 인도에만 있는 직업인 듯하다. 무려 120년이나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도시락이 잘 못 배달되어서 만나게 되는 두 주인공 남녀 사잔과 일라. 남편은 외도하느라 자신의 도시락이 바뀐 줄도 모르고 일라는 맛있게 먹어주는 사잔이 고마워 편지를 도시락에 넣는다.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진심을 담게 되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장면과 도시락을 먹는 장면, 가족과 식사하는 장면이 참 많이도 나오는 영화 런치박스. 일라의 집 식탁엔 대화가 없다. 그래서 사랑도 없다. 도시락에 담긴 편지를 기다리며 설레는 일라의 표정, 편지를 받으며 한 번도 웃지 않던 사잔이 웃으니 10년은 젊어졌단 소리를 듣는다. 그 둘은 국민총생산지수보다 국민행복지수만을 생각한다는 부탄으로 가자고 약속한다. 결말이 나오지 않는 채 영화는 끝난다. 결론은 관객이 만들라는 감독의 뜻인가. 편지를 매개로 한‘시월애’와‘접속’이 떠오르기도 한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는 대사가 좋다. 삶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일이던가.
 

감동 쥐어짜는 신파가 아니라 좋은…

△‘언터처블 1%의 우정’/올리비에르나카체 감독

영화가 개봉하던 날, 오전에 지인과 극장에서 보았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생 아들에게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하니, 자신과 보기로 해 놓고 왜 먼저 보았냐고 투덜거려서 그럼 또 보러가자며 손을 잡고 나갔다. 낮에 볼 때 저런 장면이 있었나, 오호 대사가 좋은 걸. 한 번 봐서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돋을새김으로 나타났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든 마음에 들면 자주 돌려보는 편이다. ‘쇼생크 탈출’이 그랬고, ‘언터처블 1%의 우정’ 또한 곱씹는 영화이다. 오늘은 720원에 다운받아 되새김질 했다. 프랑스 상위1% 의 신체가 부자유한 남자 필립, 하위 1%의 신체 건강한 남자 드리스와의 우정을 그린 실화이다. 부자 주인공은 백인이고, 그를 위해 일하는 남자는 흑인이다. 드리스는 아픈 사람을 어떻게 만지고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거침없는 행동이 오히려 동정의 눈길보다 편하게 느껴진 필립이 2주 동안 자신의 손발이 되어 24시간 옆에 있도록 한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전신마비인 사람을 간호하는 내용이니 감동을 쥐어짜는 신파가 아닐까 염려스러웠던 내게 몇 번을 봐도 감동을 주는 탄탄한 스토리와 웃음코드로 실망을 주지 않는다. 드리스와 함께 그림을 보러 간 날, 물감으로 황칠한 느낌의 그림을 거액을 주고 사는 필립을 보며 드리스가 자신이 그려도 저것 보다는 낫겠다며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을 필립이 비싸게 팔아준다.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고, 책으로도 나왔다. 좋은 작품은 여러 형태로 재탄생 되는 게 진리다.
 

전지적 작가 시점 소설 속 주인공이 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마크포스터 감독

판타지 영화다. 판타지 소설 영화 모두 싫어하기에 우리국민 대부분이 보았다는 ‘스타워즈’나 ‘아바타’도 보지 않았다. 애들 때문에 본 ‘해리포터’도 영 재미가 없었다. 이영화가 판타지라니 선입견으로 거절하려다가 대학생 아들이 옆에서 줄거리를 조잘조잘 거리면서 어머님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살살 꼬드겼다. 오래된 영화이니 다운로드 받는 값도 싸다는 말에 홀딱 넘어가서 검색하니 900원이었다. 과연 싸다.

하지만 이영화가 싸구려는 아니었다. 영화 시작 5분이 지나며, 이런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왜 내가 이 영화를 몰랐지? 30분후 이런 좋은 스토리의 영화가 왜 내가 모를 정도로 폭망했지? 이상하네. 아들 말에 따르면 이 영화 개봉 당시 대작이 너무 많아 묻혔다한다. 자신도 SNS에서 누군가 영화 소개하는 글을 읽고 좋아보여서 나에게 소개한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주인공 해럴드에게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는 말도 전한다. 주인공은 심리치료사를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뜻밖에도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전지적작가시점의 작가의 말소리였던 것이다.

설정이 너무 기발하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는 봤어도 이런 설정은 처음 접한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결국 해럴드는 작가를 찾아 자신의 미래를 바꾸려고 한다. 해럴드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결론은 영화를 보고 여러분이 알아내기 바란다.

슬로우푸드, 사람의 시간을 살찌운다

△‘리틀포레스트’/임순례 감독

시골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시험에 실패하고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주인공 혜원은 엄마와 살던 고향집으로 무작정 내려온다. 동네를 지키던 친구 재하와 은숙과 함께 한 끼 한 끼 해 먹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먹방이 대세인 시절이라 음식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중에 내가 해본 것은 수제비와 아카시아 튀김. 밤을 보늬째 조림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그 맛이 무척 궁금했다. 영화가 히트 한 탓인지 지인이 만들어서 맛보라고 주어서 맛나게 시식을 했더랬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면 요리하는 집이 행복한 곳이다. 인스턴트가 아닌 직접 노동해서 키운 재료로 직접 몇 시간을 공들여 만든 슬로우 푸드가 사람의 시간을 살찌운다. 그 시간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낸다.

이 영화는 기승전결이 없다. 그냥 기기기결이다. 그래서 좋다. 장면과 장면이 뜨면서 그 사이를 내가 채울 수 있도록 해준다. 자막이 올라가는데 동네 노인들 역할을 안동에서 연극 하시는 분들이 했다. 장소가 내 고향 안동에서 가까운 군위, 반갑다. 산수유가 찬란한 길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여주인공. 안동에서 산수유 본적 없었는데 어디서 촬영한 것일까 찾아보니 의성 산수유 마을이다. 혜원이 되어 영화 촬영 동네를 지전거로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

/김순희(수필가)

*윗 영화들은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 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