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한반도에서 역병의 최초 기록은 백제 온조왕 4년(BC15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전염병은 조선 후기 이르러 더욱 많이 유행하여 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인구를 감소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역병은 역신(疫神)이 사람에게 붙어 괴롭히다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귀신을 복숭아 나뭇가지로 때리거나 불을 이용해 겁주어서 쫓아내는 방법인 축귀(逐鬼)와 달래서 귀신을 떼어주는 ‘굿’과 ‘여제(<53B2>祭)’ 가 시행되었고, 더 큰 신령의 도움을 받아 벗어나는 방법으로 장승이나 성황당 등에 비는 방식이 예방과 치료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여제는 중국 주나라의 제례를 적고 있는 예기(禮記)에 따르면 천자는 일곱, 제후는 다섯, 대부는 세 가지 제사를 지내는데 이들 제사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에는 태종(1400~1418) 때 처음 기록이 보인다. 이 제사는 상시적, 일시적 2가지 형태로 행해졌으며, 왕이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 귀신 섬기기 가장 좋은 날을 택해서 지냈으나, 급하면 길일을 잡지 않고 역병이 난 지역에서 임시적으로 바로 제를 올리었다. 당시의 역병은 이겨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삶과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로 인식했기에 망자는 저승에서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산 자들은 업을 소멸시켜 극락을 누리게 한다는 법회인 수륙재(水陸齋) 같은 불교의식이 발달해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됐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단시 되던 신천지교단이 이 역병의 슈퍼전파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신분과 행적까지 감추고 있어 감염원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이만희 교주는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짓’이라며, ‘말씀과 믿음을 지키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의 것이다(요 11:25-27)’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교단뿐만 아니고 기성교단의 목사들도 이런 재해를 대개 ‘신의 벌’로 해석해 설교하고 있다. 자연에 신이 직접 개입한다고 믿었던 중세인의 사고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랑스의 천문학자였던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논문을 통해 신은 과학에서 이미 사라졌다.

구약(舊約)의 ‘숨은 신’이 된 것이다. 성경과 우리의식은 엄청난 공간적·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친 말씀을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 메시지로 바꾸는 데는 심오한 해석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식 해석으로 고대인의 세계관이 오늘의 신자들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면 종교적 상징과 비유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어 맹신이나 광신에 빠지기 쉽다. 28년 전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1992년 10월 28일 휴거소동)의 끈을 그대로 잇고 있는 이단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이단일수록 숨은 신을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현시하려는 경향이 높다. 이들과 오늘날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공통점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 방역이 ‘심각’ 단계로 올라간 날 한기총 회장은 광화문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토해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코로나여 물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