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춘희종합자산관리사
문춘희
종합자산관리사

작년 말, 본 지면에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필자의 졸고가 실렸다. 강의해 달라는 분도 있었고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격려도 쏟아졌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 글에 관심을 보이셨던 분들 가운데 과연 통장 나누기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렁이 깊지 않아 빠르게 방향을 잡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굳어버린 소비 패턴에 젖어 수습하기 쉽지 않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 입꼬리가 오르는 순간과 한숨이 푹푹 나오는 순간을 반복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경제 활동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돈’의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딩동” 급여 이체 알림 문자가 들려오는 즉시 통장 나누기를 실천한다. 맨 먼저 재정관리 전반의 선순환을 위해 ‘예비비 통장’으로 수입액의 5~10%를 보낸다. 다음으로는 3개월 평균 소비 패턴으로 파악한 지출 금액을 ‘소비 통장’으로 보낸다. 이 통장에 연결한 체크카드로 적정 소비습관을 만들어 간다. ‘고정지출 통장’에는 스쳐 지나는 재정을 이체한다. 자동이체로 빠지는 이 항목 목록은 내 삶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나를 슬프게도 하는 비밀이 감춰져 있다. 통신비, 아파트 관리비, 학원비, 대출금 상환, 보험료 등. 여기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30대 중반, 보도 쉐퍼의 ‘돈’이라는 책에서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돈은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이다. 이 사실을 터득한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대목을 읽고 기부를 시작했다. 아주 적은 돈으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들 후원하는 방식으로 기부를 한다. 마음 한켠에는 이 기부가 부메랑처럼 더욱 큰 복으로 내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심(私心) 가득하지만, 매년 연말 정산에도 요긴하고 나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느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소득에서 언젠가 닥칠 노년을 대비한 내 몫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이 있지만, 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소득이 줄거나 단절될 때를 위해 최소 10% 이상을 내 몫으로 만들어 가되 수입이 늘면 그 비중을 더 늘려가야 한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수입이 있는 동안에는 평생을 쌓아가야 한다. 내 자식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오직 나를 위한 몫이다.

아이가 블록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 몫도 만들어 가야 한다.

회사 복지가 최상이고, 다양한 장학 혜택을 받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자영업자나 조건이 맞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사립대, 예체능, 원룸, 이런 무서운 단어를 만나더라도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흔들림이 없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시킬 비용을 일찍 준비한다면 귀한 내 몫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

노후를 위해서 준비만 하는 게 삶인가? 아니다. 매달 사용하는 ‘소비 통장’이 지금 나를 위한 몫이다. 그것으로 삶을 위로받기는 너무 부족한가? 친구나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수고한 나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도 하고 싶지 않을까? 일단 지르고 나중에 갚느라 등골 휘는 것보다 나를 위한 특별한 소비 항목을 정하고 미리부터 일정 부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목적 자금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결혼, 집 구입, 혹은 투자를 위한 종잣돈 마련일 수도 있다. 이 목적 자금 준비가 충실하다면 매달 쌓여가는 기쁨, 눈덩이처럼 굴러가는 종잣돈의 위력을 결국 만날 수 있다. 종잣돈이 커가면서 본인의 투자 성향이 금융 쪽일지 부동산 쪽인지 확인해 깊이 있게 공부해갈 필요가 있다.

자산을 쌓는 방법은 수평적 방법과 수직적 방법이 있다. 전자는 수입에서 적절한 비율을 안배해 월급이 오르면 비율을 다시 조정해 가는 방식이고, 후자는 당면 문제부터 해결하고 또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법이든 최종 목적은 노동 소득과 더불어 종잣돈을 투자해 버는 자본 소득이 공존할 수 있는 수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많은 일을 감당해 내야 하는 사랑스러운 통장. 오늘부터 내 통장은 내가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