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아시아의 사원과 김종길 시인

방콕 차오프라야강 인근에 자리한 ‘왓 아룬’. 태국인들은 이곳의 불탑을 신성시한다.
방콕 차오프라야강 인근에 자리한 ‘왓 아룬’. 태국인들은 이곳의 불탑을 신성시한다.

젊은 시절. 적지 않은 숫자의 무신론자 청년들을 매혹시킨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1928~1967)의 에피소드다.

쿠바 혁명이 성공적으로 완수된 후 아프리카 콩고 등을 떠돌던 게바라는 죽기 몇 해 전부터 볼리비아에서 소수의 농민들과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러나, 남아메리카 전체를 해방시키려던 ‘이상주의자’ 게바라의 꿈은 동료의 밀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나버린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된 게바라를 미국 CIA에서 파견된 심문관이 조사한다. 둘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심문관: “당신의 행위는 신(神)이 만든 질서에 반하는 것이다.”

게바라: “신?”

심문관: “그렇다. 당신도 신을 믿는가?”

게바라: “아니. 난 인간만을 믿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게바라는 총살당했고, 이후 수십 년간 시체조차 고향인 아르헨티나로도, 그가 사랑한 나라 쿠바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기자는 신을 믿지 않는다. 무신론자다. 게바라처럼 장대하고 염결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자신의 기준으로 설정한 합리와 이성의 바깥에 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을 믿는 사람들을 경원하거나 조롱해본 적은 없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저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아니, 오히려 진실한 마음과 겸허한 태도로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무언가 가슴 찡한’ 감동 비슷한 걸 받은 적도 있다.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시엠립 사원에 새겨진 여신의 형상. 푸른 이끼에 덮여 있다.
시엠립 사원에 새겨진 여신의 형상. 푸른 이끼에 덮여 있다.

▲방콕의 ‘왓 아룬’을 앞에 두고 본 광경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을 몇 차례 오갔다. 거긴 일 년 내내 무더위에 혀를 빼물게 되는 곳이다. 용광로 옆에 서있는 듯한 괴로움을 떨치려 강 위를 시원스레 달리는 수상버스에 올랐던 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멀리 보이는 탑을 향해 고개 숙이는 한 무리의 태국 사람들을 목도했다. 왓 아룬(Wat Arun·새벽사원)을 지날 때였다.

수상버스가 오르내리는 차오프라야강(江) 한편에 자리한 이 사원의 늙은 나무들은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번성과 멸망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게다가 사원 가운데 우뚝 선 높이 80m의 불탑은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어 태국인들이 신령스럽게 떠받든다.

바로 그 탑을 향해 공손히 머리 조아리며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해 보였던지 술에 취해 떠들던 외국인 관광객들 모두가 입을 다물 정도였다. 기자 또한 자기 외의 어떤 존재에게 희망과 꿈을 비는 광경을 오랫동안 숙연하게 바라봤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신의 존재를 신뢰하며 숭배하는 사람들의 합장(合掌)을 진지하게 지켜본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궁금했다. 저들이 어떤 걸 기원하고, 무얼 소망하고 있는지가. 그러나 도저히 알 수 없는 일. 다만 중학교 시절 읽었던 시 한 편이 맥락 없이 떠올랐을 뿐이다. 김종길(1926~2017) 시인의 ‘성탄제’였다.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는 여행자.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는 여행자.

▲‘앙코르 와트’는 간절한 바람이 흐르는 공간

신의 존재는 ‘도저한 자기희생’과 타자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성탄제’에서 보여지는 아버지에게선 ‘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추운 겨울날 ‘눈 속을’ 헤쳐 아픈 아이를 위해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오는 가난한 아비.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자식에겐 그가 신처럼 보였을 게 분명하다.

절대자에게 기대고 싶은 건 어린아이만이 아닐 터. 어른들 역시 그런 마음을 숨기고 살 뿐이다. 그래서다. 김종길은 시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아버지(신 혹은, 절대자)가 눈 속에서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고. 여기서 ‘산수유’란 분명 뜨거운 위로나 크나큰 위안의 은유일 터. 태국 이상으로 신을 믿는 이들이 많은 캄보디아에서도 저마다의 간절한 바람을 손 모아 비는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크메르 왕들의 도시’로 불리는 시엠립 앙코르 와트(Angkor Wat)에서였다.

1천 년 전 크메르인들은 왕과 귀족이 죽으면 섬겼던 신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왕들이 사후(死後) 자기와 합쳐질 신의 사원을 경쟁하듯 축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앙코르 유적군(遺蹟群)’이다.

힌두교와 불교, 10세기 전 왕과 신화 속 여신의 형상 수천수만 개가 곳곳에 산재한 거기서 보았다. 석상 앞에서 무언가를 웅얼거리며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하는 캄보디아인들을.

대체 인간에게 신이란, 신에게 인간이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고 존재일까? 유신론자들에겐 정말 신의 실체가 감지될까? 신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낯선 국가 사원 앞에 선 무신론자의 궁금증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신이 보고 싶고, 신을 느끼고 싶었다.

2020년 2월. 절대자에게 기대 무언가를 빌고 싶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와 경상북도, 아니 한국 전체가 ‘코로나 19’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의 습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요즈음. 조금 과장하면 도시들 대부분이 말벌집을 건드려 놓은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롭다. 누구라도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처럼 흉흉한 시절임에도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의 주인이 제 몫으로 사놓은 마스크 중 2개를 꺼내 흔쾌하게 내밀었다. 마스크 구입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텐데도.

“이런 때일수록 뭐든 나눠야죠.” 이 말을 전하며 쓸쓸하게 웃는 그에게서 신의 그림자를 느꼈다고 하면 누군가는 터무니없는 과장이라고 할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 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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