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대학 내부통신망 글 ‘파장’
의료·과학계 근본대책 정치적 묵살한 정부에 맡겨선 안 돼
지식인 공적인 역할·행동 촉구… ‘포스텍 TF’ 즉시 꾸려야
본인도 춘천서 자가 격리…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가겠다”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적 진단과 처방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POSTECH 송호근<사진>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는 지난 25일 대학 내부 교수통신망에 현재의 코로나19 사태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글을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송호근 교수 글 전문 본문 하단 게재>

송 교수는 코로나19가 확진자 1천명을 넘기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위기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송 교수는 이 글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이대로 정부에 맡긴다면 저의 거친 예상으로는 확진자 5천명, 사망자 150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예측의 근거로 송 교수는 현 정부의 감염병 정책 실패를 들었다. 즉 지난 1월 말부터 예방과 방역을 잘 해오다가 ‘근본적 대책’을 실행하지 않는 바람에 증폭사태를 맞았고 ‘정치적 이유’와 ‘과학자집단의 권고 무시’가 큰 작용을 했다고 풀이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 주치의(General Surgeon)가 없는 비전문적인 대응체계를 꼬집기도 했다. 송 교수는 “일전에 의료계와 의료체제를 연구한 바 있는데, General Surgeon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면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은 국가 GS에게 지휘권을 넘겨서 그로 하여금 최고의 감염전공의사진을 모아 비상회의를 꾸리고 일거수일투족 일일 대책을 발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가 무엇을 아나. 그가 대구에 내려가 현장을 지휘한들, 과학적 대책과 예방정책을 고안할 수 있을까. 이게 한국의 실정이다”며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런 것을 비난할 여유가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며 한시라도 빨리 과학계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POSTECH에 TF팀을 만들어 대국민 보고와 제안을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POSTECH에서 꾸려진 과학자TF팀이 의료계와 연일 상의해서 가장 적절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설령 그것이 틀려도 이 위급상황에서는 과학자이기에 그런 공적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야 한다”며 지식인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또한 “의료계의 제안이 수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의료계와 창구를 트고 과학적 진단을 매일 내려서 일일 대책을 내놓는 것, 이것이 경북을 살리고 한국을 살리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POSTECH은 대구와 경북 바이러스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면서 POSTECH이 격전지의 사령탑이 돼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한정된 정보와 전공지식을 응용해서라도 바이러스 예방대책을 매일 내놓을 수 있다. 수학자, 생명공학자, 세균전문가, 컴공학자, 기계학부, 사회과학자 등 모두 모여 매일 대책회의를 하고 POSTECH 발 일일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월 단위의 대책도 만들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송 교수는 POSTECH 교내에 있는 협력기관인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현재 춘천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그는 “필요하면 저도 언제든 즉시 합류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송호근 교수가 지난 25일 포스텍 내 교수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인문사회학부 송호근교수입니다. 최근 확산되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과학자, 지식인들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펜을 들었습니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지하고 계실 겁니다. 이대로 정부에 맡긴다면 저의 거친 예상으로는 확진자 5천 명, 사망자 15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월 말경부터 예방과 방역을 잘 해오다가 ‘근본적 대책’을 실행하지 않는 바람에 증폭사태를 맞았습니다. 모두 정치적 이유입니다. 과학자집단의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의과학자와 의료계의 제안을 정치적으로 묵살했던 탓입니다. 지금 이런 것을 비난할 여유가 없는 지경으로 몰렸습니다. 언론 방송에는 정부 실수를 탓하는 글로 가득차 있고, 과학계와 의료계의 과학적 진단과 방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과학적 진단과 처방이 절실합니다.

 한국이 바이러스로 침몰하기 전에, 우리 무고한 국민이 바이러스 공포로 한없이 추락하기 전에, 포항 공대 과학자와 지식인집단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포항 공대에 TF팀을 만들어서 대국민 보고와 제안을 발표하는 일입니다. 한국 대학 어디서도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이 존재하는 명분이 무엇인가요? 최고의 지식과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보존하는 것, 재난에서 구하는 것, 우리 이웃과 사회가 안정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요. 지금 이 엄중한 사태를 나만의 안위만을 위해 웅크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저도 지난 17, 18일에 무은재 4층에서 근무했습니다. 5층에 확진자가 나온 날입니다. 아마 엘리베이터도 같이 탔겠지요. 무은재에 근무했던 교수와 직원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학내에 바이러스가 퍼졌을지도 모릅니다. 총장님 이하 학교 본부에서 대처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업무는 그것을 넘어 국민들을 구출하는 일입니다.

 저는 춘천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괜찮습니다. 오늘 기사에 의하면, 대구에 110명 의료진이 자원해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옥에서 헌신할 것을 자원한 것이지요. 그들은 천사입니다.

 과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명문대 포스텍은 지금 우리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책무가 있습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있어도 국민주치의는 없습니다. 제가 일전에 의료계와 의료체제를 연구한 바 있는데, 국가 General Surgeon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은 국가 GS에게 지휘권을 넘겨서 그로 하여금 최고의 감염전공의사진을 모아 비상회의를 꾸리고 일거수일투족 일일 대책을 발령해야 합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무엇을 압니까? 그가 대구에 내려가 현장을 지휘한들, 과학적 대책과 예방정책을 고안할 수 있을까요? 이게 한국의 실정입니다.

 포항공대는 대구와 경북 바이러스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격전지의 사령탑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정된 정보와 전공지식을 응용해서라도 바이러스 예방대책을 매일 내놓을 수 있습니다. 수학자, 생명공학자, 세균전문가, 컴공학자, 기계학부, 사회과학자, 모두 모여 매일 대책회의를 하고, 포스텍발 일일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월단위의 대책도 만들어질 겁니다.

 국가수준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없는 상황에서, 과학자집단이 나서야할 이유입니다. 포항공대에서 꾸려진 과학자TF팀이 의료계와 연일 상의해서 가장 적절한 대책을 내놓는 일이 3월과 4월 내내 지속되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틀려도 이 위급상황에서는 과학자이기에 의당 그런 공적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야 합니다. 의료계의 제안이 수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의료계와 창구를 트고 과학적 진단을 매일 내려서 일일 대책을 내놓는 것, 이것이 경북을 살리고 한국을 살리는 길입니다. 포스텍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호소합니다. 포스텍에 즉시 TF팀을 꾸립시다. 춘천에 은신한 저도 필요하다면 즉시 차로 내려가 합류하겠습니다. 정말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꿔온 한국이,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우리의 업적과 자산이 무너집니다. 호소합니다.

/춘천에서 송호근배상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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