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상 스님포항 운흥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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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제법(諸法)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알아내는 지혜(般若)를 매우 존중합니다. 왜냐면 그러한 지혜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올바른 종교적 행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信)만 있고 앎(解)이 없으면 미신에 흐르기 쉽고, 앎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오만하게 되기 쉽습니다. 불교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믿음과 함께 이지(理智)의 중요성을 또한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매우 지(智)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발현되는 인간애를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라고 말합니다.

자(慈·maitri)는 어원적으로 ‘우인(友人·mitra)’이라는 말에서 파생한 말로, 진실한 우정·순수한 친애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비(悲·karuna)는 애련·동정 등의 뜻으로써 보통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자비는 ‘남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고(慈, 與樂), 불이익과 고통을 덜어 주려는(悲, 拔苦)’ 인간애를 의미합니다.

불교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는 교설이 있는데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네 마음을 일체 중생에 대해서 무한히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慈)와 비(悲)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희(喜)는 남이 즐거움을 얻었을 때 그것을 흔연히 기뻐해 주는 것이며, 사(捨)는 다른 사람에게 애증원친(愛憎怨親)의 마음을 갖지 않고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보살이 이렇게 무한한 자비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고통 받고 있는 형제자매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비록 시름과 괴로움을 여의었다고 하더라도, 무수한 중생들이 죽어가는 저 슬픈 울음을 어찌 듣고만 있겠습니까?

불교 경전 중 ‘우바새계경’에 나오는 말씀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지자(智者)는 일체 중생이 생사의 고해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건지고자 하므로 슬픔을 일으킨다. 사도(邪道)에 헤매는데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음을 보고 슬픔을 일으키고, 재물과 처자에 얽매여 빠져 나오지 못함을 보고 슬픔을 일으킨다. 또 중생들이 악업을 짓고 고계(苦界)를 받으면서도 탐착(耽着)을 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일으키고, 행복을 구하면서도 그 원인을 닦지 않기에 슬픔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불교의 지혜와 자비는 참으로 크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을 얻어, 남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에게 그 큰 지혜와 자비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