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민중은 개, 돼지다’라는 막말로 비난 여론이 들끓어 어떤 고위 공직자가 곤욕을 치렀다. 잊을만하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일반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개, 돼지’라고 빗대는 표현은 말하기 뿐 아니라 듣기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의식이나 수준을 비하하는 말의 극치다. 개와 돼지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개 : 너 인간들에게 잘 못한 거 있냐?

돼지 : 글쎄, 특별히 잘못한 거 없는데 너는?

개 : 나도 하느라고 했어!

개·돼지 : 인간들이란…. ㅠㅠ

“살아서는 냄새나는 집에서 열악한 환경마다 않고 주는 대로 불평 없이 열심히 먹어주고 부위별로 육질 좋게 만들어 죽어서 충성하잖아. 고사 상에서는 힘든 거마다 않고 웃으며 분위기 띄워주지. 뼈가 으스러지면서 진국 만들어주는 건 어떻고? 심지어 발이 뚱뚱 부어도 분칠해서 인간들 입 즐겁게 해주고. 어떤 인간들은 껍질이 쫄깃하다며 술 마실 때 꼭 찾잖아. 이 정도면 하느라고 한 거 아니야?” 돼지의 하소연.

“참 고생 많네. 나도 마찬가지야. 발가락 날아갈 거 감수하며 비무장지대 지뢰밭 누벼야지, 지진이니 건물붕괴 현장에 코 들이대며 피 냄새 맡아야지, 역겨운 폭탄, 마약 냄새는 어떻고. 심지어 낙하산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일도 우리 할 일이거든. 꼴랑 사료 한 주먹 챙겨주고는 갖은 포즈로 사진 찍게 만들지. 밖에서 짜증난 일 있는 인간들 집에 돌아오면 내 기분 팽개치고 꼬리 흔들어 줘야지. 보신하겠다고 삶아먹는 인간들은 어쩌고?” 개의 맞장구.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무심결에 날린 말들이 칼보다 상처를 깊게 한다. 들녘을 순시 중이던 황희 정승이 누렁이 두 마리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두 마리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느냐?” 농부가 황희정승에게 다가와 귀에 말로 속삭였다. 멀리서 얘기해도 될 일을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농부가 의아스러워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일을 부려먹는데 짐승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귓속말을 해야 된다고 했다. 일개 농부였지만 황희정승은 농부의 사려 깊음에 감탄했다는 익히 아는 일화가 떠오른다. 선거철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분별한 말 비방이 걱정된다. 특히 품격 떨어지는 말 사용은 안했으면 한다. 정정당당하고 품위 있는 대결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량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따져보면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인간을 향해 선거 때문에 상스러운 말을 해서는 되겠는가? 세상을 살맛나게 하겠다는 선량후보자들이 오히려 말 팔매질로 세상을 혼탁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그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은 “우린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위기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은 힘을 합쳐 헤쳐 나갔습니다!”와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잘들 하시겠지만.

“사는 것도 팍팍한데,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까?”, “아니, 몸도 허해졌는데 보×탕 한 그릇 하지!”

개, 돼지라는 말, 사람을 향해 함부로 빗대어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