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천의 작가’ 백신애 (하)

영천시립도서관 앞에 세워진 백신애 문학비.
영천시립도서관 앞에 세워진 백신애 문학비.

서발턴(하위주체, subalter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민족, 계급, 연령, 젠더(성), 직위 등 모든 측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계층을 가리킨다. 그들은 민족적으로도 온갖 핍박을 받아야 하는 식민지인이고, 계급적으로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이며, 젠더적으로도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가부장제의 타자들이다. 백신애가 자신의 작품에서 즐겨 그리는 여성들이야말로 이러한 서발턴의 개념에 부합하는 존재들이다.
 

…‘호도’의 마지막에 표현된 옥남의 “영원한 침묵”은 그 어떤 담론이나 이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옥남의 고유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기 농민들을 형상화한 여타 소설과는 구별되는 백신애의 고유성이다.…

백신애의 작품 중에서 남성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서너편에 불과하다. 작품의 양에 있어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작품의 수준도 높은 것들은 서발턴에 해당하는 가난한 농촌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복선이’, ‘채색교’, ‘소독부’, ‘광인일기’, ‘식인’, ‘적빈’ 등)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백신애가 나고 성장한 경북의 지역성과 작가의 체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우선 이들 작품을 채우는 언어부터가 경북의 것이다. 백신애 연구의 초석을 놓은 김윤식은 백신애를 가리켜 “무뚝뚝하고 인정머리 없는 경상도 방언에 저려 있는 사람”(백신애연구抄, ‘경산문학’ 2집, 1986)이라고 평하였다. 국어학자 김태엽은 논문 ‘백신애 소설에 나타나는 경북 방언’(‘우리말글’ 44집, 2009)을 통해 일제강점기 경북 방언의 흔적을 잘 나타낸 작가로 백신애를 들고 있다. 백신애 작품의 상당 부분은 거친 경북 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난한 촌민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이러한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백신애 전집.
백신애 전집.

백신애의 실제 농촌 체험도 무시할 수 없다. 백신애는 1936년 12월 반야월 괴전마을 과수원에 새 집을 지어 이사하고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농민들과도 마주했던 것이다. 수필 ‘과촌민들’(‘여성’, 1937.9)에서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겪은 촌민들과의 일들을 기록하였다. “까다롭고 깍정이같이 밴질거리는 사람은 서울 놈이라 하고, 순박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촌놈이라고 하지마는 요지음의 촌사람도 여전히 순박하고 어리석은 줄만 알다가는 큰코다치기 쉽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수필에서 백신에는 촌민들의 불결함, 우둔함, 염치없음 등을 조근조근 펼쳐놓고 있다. 물론 “이들이 순박성을 일어버린 것은 너머나 남의게 속어만 오고, 없수임만 받어온 까닭”이라고 하여 그들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보여주지만, 여타의 작가들이 자신의 이념이나 감상에 따라 농민을 이해한 것과는 달리, 백신애는 농민들의 삶을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발턴을 등장시킨 대표적인 작품으로 ‘식인(食因)’(‘비판’, 1936.7)을 꼽을 수 있다. 주인공 옥남이 처한 상황은 가난은 가난이되,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제목과도 같은 완벽한 ‘적빈(赤貧)’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남편 최가가 아무것도 없는 옥남에게 돈 오전을 내놓으라고 막장의 욕설과 폭력을 퍼붓는 것으로 시작된다. 올해 스물아홉인 옥남은 지금 네 번째 임신을 하고 있는데, 앞의 아이들은 최가의 폭력으로 모두 죽었다. 해산이 임박한 옥남은 살기 위해 김문서의 농장으로 품을 팔러 간다.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김문서의 농장에서 품을 파는 것은 옥남이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옥남과 같은 동네에서 자란 김문서는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옥남에게 청혼하였는데, 이 때 옥남은 김문서의 청을 거절하고 대신 “얌전한 총각”이었던 최가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김문서는 착실하게 일하며 재산이 불같이 일어났고, 최가는 “잔인하고 무도한 비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살기 위해 옥남은 김문서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하고, 허기에 지친 옥남은 밭에 나 있는 무를 허겁지겁 뽑아 먹다가 아이를 낳는다. “밭 가운데서 어린애를 더구나 사내애를 해산했으니 그 밭 임자에게 무한한 복이 올 징조”라는 미신으로 김문서 아내는 옥남을 도와준다. 그러나 해산한 지 팔일 만에 집에 돌아온 최가는 밥을 지어내라며 옥남과 아이를 걷어찬다. 결국 이번에도 아이는 죽고 만다. 작품은 며칠을 굶은 옥남이 동네 건물 상동식에 쓰려고 준비한 음식을 먹으려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처럼 옥남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존재이다. 그녀에게는 돈은커녕 당장 죽음을 면할 땟거리가 없다. 동시에 남편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욕과 폭력을 당하는 여성이며, 심지어는 같은 처지의 동네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민족, 계급, 연령, 젠더, 직위 등 모든 측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서발턴인 것이다.

백신애 문학비 제막식이 열리던 날의 풍경.
백신애 문학비 제막식이 열리던 날의 풍경.

이 작품은 ‘여류 단편 걸작집’(1939)에 수록될 때에는 ‘호도(糊途)‘로 제목이 바뀐다. 제목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내용도 적지 않게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옥남의 비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남편은 옥남에게 하는 욕설이 아직도 모자라다는 듯이 “이런 빌어먹다가 얼음판에 가 자빠져 문둥 지랄병을 하다가 죽을 년아.”, “목탕목탕 썰어 죽일 년 같으니”, “사람을 잡아먹고 아이 새끼로 입가심 할 년”과 같은 말을 퍼붓는다. 또한 젠더적인 차별의식도 보다 선명하게 강화된다. 아이의 성별이 아들에서 딸로 바뀌었으며, 최가는 “계집아이는 낳아 머 한다고, 재수 없게 이년, 이까짓 것 먹일 것 있거든 내나 먹자.”라며 갓 태어난 아이를 때려 죽인다.

또한 옥남이 너무나 허기가 져서 무를 뽑아 먹을 때, 주위 농민들이 “무를 그렇게 뽑아 먹으면 어째, 도둑년!”이라고 욕하는 장면이 첨가되었다. 반대로 부자인 김문서 집의 호의는 생략되었다. ‘식인’에서 김문서의 마누라는 자기 밭에서 해산한 것은 좋은 징조라 하여 쌀 한 되, 미역 한 묶음, 명태 다섯 마리를 보내고, 나중에는 밥해 먹을 솥이 없는 것을 알고 냄비와 나무까지 지여 하인을 보내 밥과 국을 끓여먹게 한다. ‘호도’에서는 이 모든 일이 “쌀 한 말을 가져다주었다.”는 한 문장으로 축소되었다.

영천시는 백신애를 추모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영천시는 백신애를 추모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호도’가 창작될 때까지 3년 여 간 백신애가 경험한 일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백신애는 1938년 5월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고, 같은 해 1938년 11월에는 정식으로 이혼한다. 이 무렵에 그녀는 오빠 백기호를 찾아 중국에 갔다가 칭따오와 상하이 등을 수개월간 여행하고 돌아온다. 이러한 일을 거치며 세상을 보는 그녀의 안목은 보다 깊어지고, 남녀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욱 예리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호도’의 마지막에 동네 공동 건물의 상동식에 사용할 음식에 입을 댔다가 옥남이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 죽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식인’에서는 옥남의 죽음이 암시만 되며 끝나는데, ‘호도’에서는 “그의 입을 가린 수건 사이에 콩나물 한 개가 걸려 있을 뿐. 그는 눈을 뜬 채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갔다.”고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 때 ‘침묵’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람시가 처음 사용한 서발턴이라는 용어는 별로 언급되지 않다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학자 스피박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서발턴의 가장 큰 고통은 아무런 자산이나 능력도 없기에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발턴은 고작해야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서만 자신들의 처지가 재현되고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때 재현되고 해석되는 것은 ‘실제의 서발턴’이 아닌 재현하고 해석하는 이들의 의지와 욕망에 물든 ‘허구의 서발턴’일 가능성이 높다.

영천에서 열린 백신애문학상 시상식.
영천에서 열린 백신애문학상 시상식.

일테면 누군가는 억압받는 식민지인으로만, 누군가는 가난한 자로만, 누군가는 힘없는 여성으로만 서발턴을 해석하거나 재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온갖 고통이 중첩되어 있는 서발턴이 그 어느 하나로만 해석된다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자 왜곡일 수밖에 없다. 서발턴은 억압받는 조선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민이며, 또한 집에 가서는 그 잘난 남편이나 아들을 돌보느라 허리가 휘는 여성인 것이다.

백신애의 소설들이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이러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신애는 그 많은 고통을 짊어진 이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고, 함부로 특정한 맥락 속에 위치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호도’의 마지막에 표현된 옥남의 “영원한 침묵”은 그 어떤 담론이나 이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옥남의 고유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기 농민들을 형상화한 여타 소설과는 구별되는 백신애의 고유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성은 가족-사회, 전통-근대, 윤리-욕망, 공동체-개인, 중앙-지역, 남성-여성이라는 수많은 이분법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고유성을 유지하려고 한 백신애의 고투가 낳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이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