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암 대웅전과 홍매. 자장암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운제로 679에 위치해 있다.

상큼한 겨울날, 반쯤의 물만 채운 오어호는 공사중이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나 오어사의 아침 풍경은 등산객들로 어수선하다. 그들의 한량없이 가벼운 웃음과 대화들이 내 귀를 자극한다. 그들에게 오어사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길목에 있을 뿐이다. 개발의 편리함이 빚어낸 풍경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옛날의 오어사를 자꾸만 그리워한다.

운제산은 신라사성(新羅四聖)으로 불리는 자장, 의상, 원효, 혜공이 수도한 명산이다. 오어사를 중심으로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원효암, 가파른 바위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자장암, 두 암자의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전설 속의 스님들은 구름을 사다리 삼아 서로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운제산이라 부른다.

오어사의 아침 예불소리는 인파 속에서 외로운 배경이 되어 흐르고, 절은 관광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왁지지껄 절을 구경한 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커다란 동종 앞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게임을 하듯 동전을 던지며 환호성을 지른다. 예불소리 홀로 대웅전 근처를 맴돌 뿐 경건한 산사의 아침풍경은 고대할 수가 없다. 휴일에 산사를 찾아나선 나의 불찰이다.

오어사 뒤쪽 산 위에 앉아 있는 자장암이 보인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천상의 세계, 마치 영겁의 시간을 안고 살아갈 것만 같다. 아픔과 괴로움, 시끄럽고 번잡한 세속을 뒤로하고 살아가는 자장암의 눈빛을 만나고 싶다. 자장암은 오어사(吾漁寺)의 산내 암자로, 신라 진평왕 (578년) 자장율사와 의상조사가 수도한 곳으로 오어사와 함께 창건된 절이다.

이십여 년 전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지며 올라갔던 기억을 더듬으며 산을 오른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면 간간이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숨 고르며 일상 속의 나를 만나는 것도 좋다. 부도밭을 지나자 대나무 숲길이 바람을 품고 일렁이며 길을 연다. 뜻밖에도 가파른 경사길 마다 나무계단이 친절히 놓여 있다. 옛것을 그리워하면서도 편리한 나무계단 앞에서 좋아하는 부조리한 내 몸을 읽는다.

산길은 인적 없이 고요하다. 한 마리 까마귀가 정적을 깨며 지나갈 뿐, 겨울 햇살이 잡목 숲의 주인이다. 숨이 찰 때마다 산 아래 풍경을 돌아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거리는 호수의 풍광보다 얼마큼 올라왔는지 가늠해 보는 뿌듯함도 크다.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소음은 멀어지고 나는 숲의 일원이 된다. 북적대는 둘레길에 비해 자장암 오르는 산길은 여유로 넘친다.

외롭고 적적할거라 여겼던 산길은 아늑했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았다. 자장암과 인사를 건네기가 무섭게 세찬 바람이 안겨들어, 나만의 특별했던 의례도 이내 끝이 나고 말았다. 고즈넉한 암자를 예상했는데 산 너머로 이어지는 차로를 이용한 차들이 벌써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제를 지내는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설법전을 지나쳐 무심의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대웅전으로 향한다. 애초의 목적지도 그곳이었다. 대웅전은 허공 속에 가려진 동해의 푸른 바다를 더듬고 있는 듯하다. 높은 곳에 서면 내 눈도 높고 먼 곳을 향할 줄 알았는데 눈길은 자꾸만 아래로 향한다. 내가 올라온 길을 더듬고 둘레길을 걷던 낯선 사람들의 소란함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반짝이는 오어호의 윤슬과 낮은 자세로 침묵을 지키는 오어사가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흔들다리를 구르며 장난을 치던 남자들의 행렬도 시끌벅적함을 이끌고 산모롱이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유치한 행동들조차 이곳에 서니 정겨운 것으로 변한다. 눈을 감고 바람결에 귀를 기울인다. 멀리 오어호의 은빛 물결이 내 안까지 밀려들어와 찰랑거리는 아침이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뒤늦게 자장암의 의연함도 눈물겹다는 것을 알았다. 햇살을 품은 대웅전의 온화한 앞모습과 달리 그 뒷덜미는 겨울바람에 한없이 떨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맞는 바람은 더 차고 세다. 대웅전 뒤편 사리탑 옆에는 어린 홍매가 꽃을 피운 채 심하게 휘청인다. 홍매의 화려한 시련이 절벽 위의 자장암과 닮았다. 멀리서 볼 때 피안처럼 여겨지던 이곳에도 그만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결코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소란과 번잡함에 휘둘리지 않고 수행하듯 흔들림없이 깨어있는 오어사, 호수의 파란들이 일으키는 쉼없는 재잘거림과 삼삼오오 둘레길에 피어나는 건강한 수다들, 공사를 하는 중장비의 모습조차 정겹고 사랑스럽다. 어쩌면 우리가 갈망하는 피안의 세계는 차안의 세계 안에 있을지 모른다. 멀어져간 것들이 그립 듯,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우리의 주변과 일상이 혼탁하고 힘들수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외출을 삼가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이웃에서 과일이며 채소가 든 보따리를 대문간에 두고 갔다. 함께 마음 모아 위기를 이겨내자는 문자 하나 남기고. 어수선한 마음에 햇살이 퍼진다. 코끝이 찡하다.

모두가 힘들 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살 만한 세상, 바로 피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