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眞朴) 정치인’ 이외 인사에 컷오프 칼 겨누는 건 부당
여차하면 TK지역의 정치력이 완전히 초토화될 위기 처해

본격화되고 있는 미래통합당 공천에 관한 관심이 온통 TK(대구·경북)지역 공천에 쏠리고 있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작금 TK 공천신청자에 대한 면접 심사를 거듭 미뤄가면서 지역 중진을 중심으로 ‘불출마’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국 선거판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 TK 정치인들을 한 묶음으로 달아매어 몽땅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은 심히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여론 또한 한켠에선 만만찮게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대 총선 공천 때 당시 권력 핵심이 진박(眞朴 진짜 박근혜계) 정치인들을 키우려고 장난을 친 일은 천추의 한이며, 지역에서도 기억하기 싫은 참혹한 사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비극 역시 그 우격다짐의 패 가르기 모략행태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권력의 칼자루를 쥔 진보정권이 온갖 실정(失政)으로 나라를 거덜내고 있다는 현실의 원죄로부터 TK정치가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최근의 흐름처럼 TK정치인들 모두를 향해 옥쇄를 강요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은 짓과 다르지 않다. 옥석을 구분하지 않고, TK정계의 고목·잡목 할 것 없이 몽땅 싹을 잘라버리려는 횡포는 온당치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렇게 온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리면 비바람은 누가 막고, 홍수는 또 어떻게 견디나. TK지역의 현역 컷오프는 보수정치를 말아먹은 친박·진박 핵심 책임자들로 한정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TK지역을 기반으로 새롭게 정계에 진출하려는 인사들의 면면도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다시 줄 서는 일에만 능한 초선들만 즐비하게 당선시켜 놓으면 국회를 비롯한 중앙정치권에서 TK정치는 존재가치를 잃는 것은 물론, 번번이 타지역 정치 거목들의 식민지 노릇이나 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역사이래 끈질기게 이 나라 정치의 핵심 역할을 해온 T·K정치가 이렇게 퇴락하고 초토화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통합당 공천 막바지에서 피를 말리고 있는 T·K공천이 지역 정치의 씨를 말리는 쪽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실패한 정권의 오명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패거리 정치를 뒷배로 한껏 누리고 거들먹거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무능과 책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학살 컷오프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따름이다.

미래통합당 공천과정을 보고 있으면 4년 전 진박을 감별하던 그때가 새삼 오버랩된다. 차이라면 그때는 대놓고 설쳤고 지금은 소리 없이 물 밑에서 움직인다는 것뿐이다. 그러는 사이, T·K국회의원들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흐름을 보니 주말 동안 거의 다 자빠뜨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또 한 번의 공천 대학살, 그 칼끝에 저항과 반발의 움직임도 없지 않다는 소식이다. 과도한 분열의 잉태는 집권 여당이 돌아서서 웃게 만들 수도 있다. 미래통합당이 TK정치의 전통과 잠재력을 감동적으로 폭발시킬 지혜로운 공천작업을 완성해내길 기원한다. /안재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