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담아낸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기생충’을 화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하고 답답한 우리의 내면을 활짝 열어준 ‘기생충’이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는 무겁고 우울하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과 상처를 보듬는 장르로 나는 기록영화를 꼽는다. 그것은 필시 ‘송환’의 김동환 감독의 지론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영화가 세상을 바꾼다!” 2004년 개봉된‘송환’은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기록영화다. 자생적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 수형생활을 견뎌온 장기수들의 일상을 잡아내면서 분단으로 고통받는 인간군상의 내면을 천착한 ‘송환’.

2003년에 개봉돼 화제를 모은 기록영화 ‘영매’는 다른 차원의 삶을 그려낸다. 세습무와 강신무의 일상과 고뇌를 담아낸 ‘영매’는 무당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대를 이어 무당일을 하는 세습무와 신내림으로 무당이 되어야 했던 여인들의 고단한 행장(行狀)을 보여준다. ‘송환’이든 ‘영매’든 기록영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다채로운 면면을 드러내는 까닭에 여기저기 눈물바다가 만들어진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역시 영화를 보는 동안 왼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2015년 개봉된 ‘위로공단’은 1970년대 동일방직과 와이에이치 사건 그리고 1985년 구로공단 연대투쟁, 2005년 기륭전자 사태, 2013∼14년 캄보디아 유혈사태까지 다룬다. 40년 남짓한 시간대를 포착하는 감독의 시선은 과거를 거쳐 미래를 향한다.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하되 정곡을 찌른다. “우리는 노동과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가?!”

‘다산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말이 끝내 잊히지 않는다. “1970년대가 공순이의 시대였다면, 요즘은 콜순이의 시대일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산업화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1970∼80년대 수출역군으로 불렸던 공장 노동자들의 일상을 대표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우리는 동일방직과 와이에이치 사건을 거명한다. 여공들에게 똥바가지를 뒤집어 씌우고, 대량해고를 일삼은 사업가들. 그들 배후에서 이득을 취한 정치인들.

와이에이치 사건으로 촉발된 부마항쟁과 10·26은 유신의 숨통을 끊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것은 1985년 구로지역 연대투쟁으로 발화한다. 극단 ‘천지연’의 ‘선봉에 서서’ 공연이 이뤄진 것은 1987년 영등포의 ‘성문밖교회’였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모여 ‘선봉에 서서’를 열창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떨려온다.

‘위로공단’ 끄트머리에서 한국인 노동자와 같은 임금과 상여금을 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요구에 우리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노동 없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