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박쥐 때문에 세상이 뒤숭숭하다. 그것도 경자년 쥐띠 해에 말이다.

동굴 등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살고 활동도 주로 밤에 하는 데에다가 검은 몸 색깔에 얼굴 모양도 흉측하기까지 하여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는 박쥐는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이유로 지금 불호가 더 심해졌다. 서양에서도 박쥐는 여전히 혐오스러운 동물로 대접받고 있다. 혹, 영화 ‘배트맨’ 덕에 조금은 나아졌을까?

날다람쥐도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활공을 하는 것이라서, 스스로 날 수 있는 포유류는 박쥐가 유일하다고 한다. 박쥐는 설치류인 쥐와는 전혀 다른 포유류 종이다. 그렇지만 한자로도 비서(飛鼠), 선서(仙鼠), 천서(天鼠)이라 하여 날아다니는 쥐로 묘사하고 있으니 박쥐가 쥐처럼 인식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솝은 새 무리에 붙었다가 짐승 무리에 붙었다가 결국은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은 박쥐를 통해 ‘양다리 걸치기’를 꾸짖고 있다. 홍만종(洪萬宗)도 ‘순오지(旬五志)’에서 기회주의적인 사람의 행동을 편복지역(蝙蝠之役)이라 표현하고 있다. 편복(蝙蝠)은 박쥐의 또 다른 한자 이름으로, ‘편복지역’은 ‘박쥐같은 구실’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이솝)가 지은 우화를 조선시대 홍만종이 읽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박쥐는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쥐는 양다리 걸치기를 하지도 않고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하기야 사람 말고 이중적인 동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더욱이 모기, 나방, 작물을 해치는 벌레들을 하루에도 수백 마리씩 잡아먹음으로써 인간에게는 이로운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편복’의 ‘복’이 복(福)자와 소리가 같아 박쥐를 먹는 것이 복을 받아들이는 행위로 여겨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가구나 생활용품, 노리개의 장식에도 박쥐문양을 넣음으로써 복과 행복을 생활 속에 담고자 했다. 이처럼 박쥐가 사람들에게 부정적 인식과 함께 긍정적으로도 받아들여진 것이 박쥐의 이중성이라면 이중성이라고나 할까.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박쥐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이육사는 시 ‘편복(蝙蝠)’에서 “가엾은 박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라고 노래하였다. 시인에게 일제 강점기 국권을 빼앗긴 조국은 어두운 동굴이었고, 그 동굴 속을 떠돌며 살아가는 신세가 된 우리 겨레는 가엾은 박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엾은 박쥐가 아니다. 일본은 크루즈 선을 바이러스의 배양 접시처럼 만듦으로써 많은 나라들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으로 칭찬을 받고 있지 않은가!

박쥐는 혐오스럽게 보일망정 이중적이지도 가엾지도 않은 동물이다. 복이라는 소리가 같다고 박쥐를 잡아먹는 인간이 어리석고, 어떻게 해서라도 복을 좇는 인간의 욕심이 비난받을 일이지 자연에 순응하여 살고 있는 박쥐는 죄도 잘못도 없다.

억울한 박쥐를 자연에 놓아주고, 인간의 욕심을 탓하고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