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

‘기생충’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석권, 92년 오스카상에 처음 있는 외국어 영화의 수상! 세상의 모든 수식어를 동원하더라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이다. 얼마 전 70세를 훌쩍 넘기신 숙모님을 모시고 영화관을 찾았다. 인기리에 상영 중인 ‘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를 선택했다. 숙모님과 함께 역사적 사건이 있던 동시대에 살았기에 비록 영화적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몰입도는 상당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숙모님은 “애비야, 머라카노?”라며 놓친 대사를 물으셨다. 노령에 따른 약간의 난청과 빠른 대사 때문이다. 숙모님보다 더 난청인 나 역시 효과음이 깔린 대사는 놓치기 일쑤다. 그런 탓인지 모처럼 몰입하며 본 영화의 감흥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평소처럼 편치 않은 마음이 밀려왔다. 영화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날 불쑥 40대의 나이에 난청이 찾아왔다. 보청기를 착용해야 할 정도의 난청, 기계적으로 증폭된 음으로 듣게 되니 뇌의 청각작용과 달리 모든 소리를 듣게 되어 혼음현상이 있다. 효과음이 깔리는 영화대사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은 청취에 지장이 생긴다. 영화대사나 음악을 정확하게 듣는 것은 작품 감상의 중요한 요소다. 난청이 있는 사람들은 결국 작품성에 상관없이 보통 사람들보다 질이 떨어진 예술품을 감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난청은 대개 노인성 질환으로만 여겨졌으나, 지나친 생활소음에 노출되는 현대생활에서 연령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영화는 왜 한글자막이 없지’하는 아쉬운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에도 흥미로운 영화를 감상하고도 감흥이 오래가지 않았다.

국내에서 개봉되는 외국 영화는 대개가 한글 자막이 있는데 한국 영화는 대부분 없다. 관객이 모두 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TV처럼 자막을 넣으면 어떨까? 청각장애인, 난청인, 노년층(청력의 문제가 아니라도 젊은 층의 랩과 같은 빠른 말투를 잘 못 알아듣겠다고 한다)을 위해 한글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백세 시대를 맞아 영화관람, 음악회 같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음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휠체어 이동시설 보호대 등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다. 장애인으로서 겪게 되는 단순한 불편해소 차원을 넘어 정상인과 같은 삶의 질을 누릴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된다. 영화감상을 하며 “머라카노?”라고 동행한 사람에게 자꾸 묻는 사람이 많이 있다면 아직은 더 분발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인 거장과 작품을 낸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고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도 알릴 겸 한글 자막 삽입은 성숙된 공동체 의식을 보여줄 기회다. 물론 졸다가 효과음에 놀라 ‘자기야, 머라카노?’라며 흘린 침을 슬쩍 닦는 사람은 해당 없겠지만….

‘기생충’ 찬스, 살렸으면 좋겠다.